‘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빛 활용해 정확도 높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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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존스홉킨스대 의대 연구진 몇시간 걸리던 유전자 교정기술
수십초만에 목표 DNA 절단 성공

미국 존스홉킨스대병원 연구진이 특정 빛에 활성화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개발했다. 존스홉킨스대 제공
미국 존스홉킨스대병원 연구진이 특정 빛에 활성화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개발했다. 존스홉킨스대 제공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DNA)에서 돌연변이 염기를 찾아내 잘라내고 정상 DNA를 붙여 교정하는 기술이다. 돌연변이가 생겨 시력을 잃거나 퇴행성 뇌질환, 혈액 질환 등 유전질환을 앓는 환자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는다.

여러 유전자 가위 가운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는 최근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꼽힌다. 이 기술은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복사본인 RNA를 길라잡이 삼아서 Cas9이라는 효소(단백질)가 특정 DNA 염기서열과 결합하도록 만든 뒤 원하는 돌연변이 염기를 잘라내는 원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상 염기를 잘라내는 ‘오프타깃(Off Target·표적 이탈)’ 문제를 해결하고 정확도와 신속성을 향상하는 일은 수년간 연구자들 사이에서 숙제로 남아있었다.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교정을 둘러싼 생명윤리 논란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이런 한계를 해결할 연구 성과들이 최근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연구진은 지난달 11일 유전자 교정 부위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연구진은 빛을 활용해 정확하고 신속하게 특정 염기를 잘라내고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특정 파장의 빛에 노출될 때만 활성화하는 감광성 RNA를 개발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적용했다. 유전자 가위가 체내에서 특정 빛에 노출될 때까지 활성화되지 않아 절단 부위를 정확히 제어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연구진은 인간 배아 신장 세포와 골수암 세포에 전기 펄스를 가해 세포막에 미세한 구멍을 만들었다. 그런 뒤 감광성 RNA 분자를 붙인 유전자 가위를 세포 안으로 침투시켜 12시간을 기다렸다. 연구진은 특정 파장을 가진 빛을 쬐이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목표한 염기를 잘라내는 시간을 쟀다. 빛을 비추고 30초 내에 표적 염기 50% 이상을 잘라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분 만에 정상 DNA로 교체하는 교정 작업이 이뤄졌고 15분 뒤에는 모든 교정이 완료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를 주도한 류양 존스홉킨스병원 박사후연구원은 “기존 유전자 교정 기술로는 몇 시간 걸렸지만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수십 초 만에 목표한 DNA를 정확하게 잘라낸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또 인간 세포에서 흔히 발견되는 복제된 유전자 염기 두 개 중 하나만을 정교하게 잘라내는 데도 성공했다. 연구진은 “비정상적인 유전자 복제로 발병하는 퇴행성 유전 뇌질환인 헌팅턴병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태 가톨릭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정확한 작동 시간을 알고 원하는 시점에 유전자 가위가 작동하도록 제작하면 더 정교한 교정이 가능해진다”며 “유전자 교정 메커니즘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명확히 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배아 연구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슈흐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교수는 최근 배아 단계에서 이뤄지는 유전자 교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알아내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공개했다.

연구팀은 심장질환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가진 정자로 만든 배아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할 경우 돌연변이가 포함된 염색체의 상당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징후를 발견했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교정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염색체가 유실되거나 섞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강은주 서울아산병원 연구조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간 체세포 전반에서 유전자 교정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크리스퍼#유전자 가위#dna 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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