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관리도 로봇이 하는 시대 '쿼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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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3월 4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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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백 (출처=동아닷컴)
쿼터백 (출처=동아닷컴)
2002년 컴퓨터가 인간을 상대로 체스를 이겼다. 그리고 올 3월에는 한국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바둑 대결을 한 판 벌인다. 아직 인간처럼 사고하는 인공지능은 없지만, 언젠가는 현실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든다.

인공지능보다 최근 많이 쓰이는 기술은 머신러닝이다.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의미하는 머신러닝은 인공지능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머신러닝을 활용한 로봇은 이미 다양한 서비스에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 포토. 구글 포토에 사진을 올리면, 로봇이 사진을 판독해 하늘, 구름 등을 인지해 분류해 준다.

지난 2월 KB국민은행에는 독특한 금융상품이 하나 출시됐다. 로봇이 자문하는 신탁상품 '쿼터백 R-1'이 바로 그것이다. 해당 상품은 핀테크 기업 '쿼터백'이 KB국민은행과 투자자문 계약을 맺고 나오게 된 것. 과연 어떤 기술로 해당 상품이 운용되는 것인지 궁금해서 직접 쿼터백 양신형 대표를 만나봤다.

쿼터백 (출처=동아닷컴)
쿼터백 (출처=동아닷컴)


쿼터백은 설립된 지 2년 반가량 된 회사다. 그동안은 마땅한 상품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상품을 내놓을 수 없었다.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를 먼저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어드바이저(자문가)의 합성어다. 인간이 하던 자문 역할을 로봇이 대신해주는 자동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말한다.

지난 2년 넘게 쿼터백은 데이터를 모으고,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현재 보유한 데이터만 920조 개. 쿼터백 양신형 대표는 "말로만이 아닌 실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알고리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체 인력은 30명가량으로 절반이 펀드 매니저, 애널리스트 등 금융계 출신들이다. 이들의 전문 지식이 알고리즘의 기반이 되는 셈. 알고리즘은 머신러닝이 적용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고도화된다고 양신형 대표는 밝혔다. 미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의 수익이 점점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이는 로봇이 러닝머신을 통해 점점 좋아지기 때문이라는 게 양신형 대표의 설명이다. 미국은 이미 3년 전에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이 나와서 판매가 되고 있다.

920조 개의 데이터는 글로벌 ETF(Exchange Traded Fund, 상장지수 펀드)가 대상이다. 즉 쿼터백은 ETF에만 투자하고 있다. ETF는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거래 목적의 투자신탁(펀드) 상품이다. 주식, 원자재, 채권 등 자산으로 구성되며, 거래되면서 순자산가치로 수렴한다. 거래비용이 낮고, 세금이 적으며 주식과 비슷한 특징이 있어 상장지수 상품 중 가장 인기 있는 유형이다.

KB국민은행으로 출시된 쿼터백 R-1은 국내 상장된 ETF 중 8~12개를 선별해 투자한다.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여러 개의 ETF가 수익률을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한마디로 분산 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

양신형 대표는 "4~7%의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며 "고위험 고수익보다는 안정적인 중위험 중수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험은 줄이고, 조금이라도 고객이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 목표인 셈이다. 은행은 예금 이자율이 2% 정도다. 만약 7%의 수익률이 나온다면, 1억 원을 가만히 두기만 해도 10년이면 2배인 2억 원이 된다.

쿼터백 (출처=동아닷컴)
쿼터백 (출처=동아닷컴)


투자했다가 손해 봤다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오는 상황에서 이 정도 수익률이면 은행에 돈을 묶어두는 것보다는 좋아 보인다. 국내는 펀드매니저 80%가 시장 수익률을 좇아가지 못 한다고 양신형 대표는 말한다. ISM, 실업률, 경제 지표 등 살펴봐야할 지표는 다양하지만, 사람은 이를 매번 챙기기 힘들다. 자산운용사는 200명이 붙어 3,000개의 자료를 살핀다. 하지만 로봇은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한다. 쿼터백은 몇 명으로 30만 개의 자료를 분석한다고 양신형 대표는 말한다.

조금이라도 고객에게 높은 수익률을 주기 위해서 취한 전략은 중장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것. 포트폴리오 관리를 한 달 이상 길게 잡아가고 있다. 게다가 로봇이 거래하다 보니 수수료도 기존보다 훨씬 저렴하다. 환매 또한 로봇이 알아서 다 해준다.

물론 로보어드바이저가 요술방망이는 아니다. 쿼터백 상품은 엄연히 펀드 투자이기 때문에 원금, 수익률 보장이 되지는 않는다.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양신형 대표는 우리나라 그 어떤 펀드보다 안정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분산 투자로 위험성을 줄이기 때문이라고. 쿼터백 R-1의 최저 가입 금액은 2,000만 원으로 이전에는 이 금액으로 분산투자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로보어드바이저이기에 낮은 금액으로 분산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쿼터백은 자산관리의 대중화를 모토로 하고 있다. Private Banking의 약자인 PB는 개인 고객이나 가계, 개인 조직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해주는 금융 서비스로, 거액의 재산을 보유한 고소득층의 부호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맞춤 서비스였다. 서민은 이런 서비스를 받기 어려웠는데, 쿼터백은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시스템을 만들어 서민들도 쉽게 금융 상품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금융권에서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은 쿼터백이 처음이며, 현재까지는 유일하다. 양신형 대표는 당분간 다른 핀테크 회사에서 비슷한 상품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쿼터백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로보어드바이저를 만드는 데에만 2년이 넘게 걸렸지만, 대부분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는 작년에 생겼다.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투자자문사 일임 라이센스도 필요하다. 투자자문사 일임 라이센스 발급에만 서너달이 걸린다.

은행권은 무척 보수적인 곳이다. 최근 핀테크 열풍이 불고 있다고는 하지만, KB국민은행이 스타트업의 자문을 받는 것은 다소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로봇이 자산을 관리한다니 오히려 더 믿지 못 하는 이도 있겠지만,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좋다는 것이 양신형 대표의 말이다. 상품 출시 전 다양한 검증 절차를 거쳤겠지만, 실전에서 목표 수익률인 4~7%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 미국은 이미 3년 전부터 생겨나 좋은 실적을 내고 있으며, 쿼터백은 상반기에 역으로 미국 진출까지 노리고 있다.

동아닷컴 IT전문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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