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극중 사약 장면은 NG… 왜? 마신후 10분만에 안 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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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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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사약의 성분과 약효, 궁금한 사실들

2002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의금부 관리들이 중종의 후궁 경빈 박씨(도지원)에게 항아리째로 사약을 붓고 있다. 극 중 경빈은 1분도 되지 않아 죽지만 실제로는 더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동아일보DB
2002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의금부 관리들이 중종의 후궁 경빈 박씨(도지원)에게 항아리째로 사약을 붓고 있다. 극 중 경빈은 1분도 되지 않아 죽지만 실제로는 더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동아일보DB
조선시대 최고의 악녀로 꼽히는 장희빈은 여배우에게는 선망의 배역이다. 숙종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빼어난 미인이었다는 점과 강한 성격의 캐릭터는 당대 가장 아름답고 연기력이 뛰어난 여배우에게만 허락된다.

장희빈이 등장하는 사극의 백미는 역시 그가 사약(賜藥)을 받는 장면. 창경궁 취선당(就善堂) 앞에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난 장희빈이 소복을 입고 꿇어앉아 있다. 장희빈은 눈을 부라리며 사약 사발을 뒤엎고는 “나를 죽이려거든 세자와 함께 죽이라”며 패악을 부린다. 이를 지켜보던 숙종은 ‘강제집행’을 명한다. 의금부 도사와 그 수하들이 장희빈의 양팔을 잡은 뒤 막대로 입을 벌려 사약을 들이붓는다.

세 번째 사발을 들이켰을 장희빈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미처 삼키지 못한 약과 함께 흘러내린다. 장희빈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마지막으로 세자(윤·훗날 경종)를 만나게 해달라”며 흐느끼다 이내 고개를 떨군다. 장희빈이 그렇게 한 맺힌 생을 마무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0분.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위의 장면은 ‘NG’다. 여배우의 연기가 나빠서가 아니다. 대사가 정확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문제는 사약에 있다. 조선시대 사약은 독한 장희빈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갈 만큼 ‘약발’이 좋지 않았다.

○ 재료는 철저한 비밀

사약의 재료에 대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사약 재료와 제조 방법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한의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조선시대의 야담이나 본초강목(本草綱目) 등 고서적을 참고해 사약의 재료를 역추적할 뿐이다. 현재 학자들은 ‘부자(附子)’ ‘비상(砒霜)’ ‘천남성(天南星)’ 등이 사약의 주재료였다고 본다.

이 약재들은 강한 독성을 지녔지만 사람의 몸에 들어가 양(陽)의 기운을 극대화하는 성질이 있어 약(물론 소량)으로도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자는 미나리아재빗과 식물인 투구꽃을 이용해 만든다. 중국 당나라 때부터 대표적인 독약으로 꼽혔다. 부자 속 ‘아코니틴’이란 성분은 심장정지, 호흡곤란, 운동신경마비, 내장출혈 등을 일으킨다.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의 눈을 멀게 한 것도 부자다. 비상은 비소(As) 화합물이 주성분인 맹독성 물질이다. 중국 명(明)대의 약학서 본초강목은 비상에 대해 ‘대열, 대독의 약 중에서도 격렬해 술과 함께 먹으면 눈 깜빡할 사이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천남성은 맹독성 알칼로이드(질소를 포함한 염기성 유기화합물)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맹독성 약물을 사람이 먹었을 때 금방 죽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의학자 야카즈 도메이가 쓴 ‘한방치료백화’에는 부자 중독 사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1931년 4월 일본 삿포로에서 일가족 3명이 부자로 나물과 된장국을 해먹었다가 중독돼 1명이 숨진 사건이다. 숨진 사람은 서른한 살의 여성. 그는 오후 7시경 가족과 저녁식사를 한 뒤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현기증을 호소하며 중독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사지마비, 구토, 갈증, 설사 증세를 보이다 다음 날 오전 5시 반에 숨을 거뒀다. 부자를 먹고 죽음에 이르는 데 10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비상도 마찬가지다. 정지천 동국대 교수(한의학)는 자신의 책 ‘조선시대 왕들은 어떻게 병을 고쳤을까’에서 “비상을 한꺼번에 치사량 이상 먹으면 중추신경 기능이 마비돼 한두 시간 뒤에 사망한다”고 했다. 이상곤 서울 갑산한의원장은 “한약은 양약처럼 몸에 바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약을 먹은 뒤 10분 만에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열여섯 잔 들이킨 사연

사약의 약발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사약을 ‘마신다’는 점이다. 사약은 사람이 마시고 난 뒤 위장에서 흡수돼야 비로소 중독 증상이 나타난다. 적어도 30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독약은 위에서 활성이 가장 약해진다. 위산과 간의 작용을 통해 독성분의 90%가량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암 송시열은 1689년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을 때 입천장을 긁어내고 약을 마셨다는 뒷이야기를 남겼다. 흡수를 빠르게 해 약이 잘 듣게 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에는 사약의 효능을 키우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썼다. 단종은 사약을 받은 뒤 군불을 땐 온돌방에 30분이 넘게 누워 있다가 서서히 죽어갔다는 설이 있다. 이는 열에 열을 더해 약효를 강하게 하고, 약 기운이 더 빠르게 돌게 만들기 위해서다. 김호 경인교대 교수(사회과교육)는 “단종의 야사는 세조의 악랄함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할 경우 약 기운이 더 세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삼 같은 한약재(몸에 열을 낸다)를 같이 넣거나 술(순환을 빠르게 한다)에 사약을 타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상곤 원장은 “사약을 마신 사람들은 긴 시간에 걸쳐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죽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사람이 사약을 받고 쉽사리 죽지 못해 ‘고생’을 했다. 16세기 문인인 금호(錦湖) 임형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사약을 먹다가 안주를 권유받는 기괴한 경험을 했다. 임형수는 1547년(명종 2년) 일어난 양재역벽서사건(조정을 비난하는 내용의 벽서가 발견된 사건)에 연루돼 43세의 나이에 사약을 받았다. 그런데 사약을 탄 독주를 열여섯 잔이나 마시고도 멀쩡했다. 결국 종이 울면서 안주를 내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끝내 안주를 물리치고 독주 두 잔을 더 들이켰지만 아무 일도 없자 결국 스스로 목을 맸다.

사약의 효능은 사람에 따라, 재료에 따라 달랐다. 부자는 종류와 채취 시기, 생산지에 따라 독의 강도가 천차만별이다. 또 사약을 지을 때 너무 오래 열을 가하면 독성이 제거돼 그냥 약이 되어 버린다. 천남성도 독성을 제거하면 가래를 진정시키고 막힌 곳을 뚫어주는 약이 된다.

○ 아무나 못 먹는다?

사약은 사약(死藥)이 아니다. ‘하사할 사(賜)’에 ‘약 약(藥)’자를 쓴다. ‘임금이 하사한 약’이라는 뜻이다. 제조도 내의원에서 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사약은 아무나 먹을 수 없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사약을 ‘왕족 또는 사대부가 죄를 지었을 때 임금이 내리는 극약’이라고 말하고 있다. 낮은 지위의 죄인들은 사약이 아닌 교형(교수형)이나 참형(목을 베는 형벌)을 당했다.

임금이 사약을 내린 것은 유교 사상에 따라 사자(死者)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옛사람들은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을 불명예로 생각했다. 사약은 ‘명예로운 죽음’을 가져오는 도구였던 셈이다.

독극물 사형제도는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 미국 과테말라 중국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미국은 전기의자형과 교수형, 독살을 병행하다 2004년 이후에는 독극물 사형을 주로 집행하고 있다. 2011년 7월 미국 조지아 주에서 독극물 사형 집행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독극물 사형이 사형수에게 고통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사약(賜藥)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지만 사약(死藥)은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바로잡습니다 ▼

◇본보 6-7일자 B6면 ‘극중 사약 장면은 NG… 왜? 마신 후 10분 만에 안죽으니까! ’ 기사 중 장희빈의 아들(훗날 경종)은 ‘세자 균’이 아니라 ‘세자 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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