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은(가명·12) 양은 간질 발작이 30분 이상 계속되다 의식을 잃는 ‘간질 중첩증’ 환자다. 25일에도 혼수상태로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실려 왔다. 김 양은 3년 전부터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최근 3일간 무심코 약을 끊었는데 그게 화근이 된 것이다. 평소에는 일단 병원에 들어오면 일주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김 양의 증세나 치료방식도 3년 전과 같았고, 주치의도 바뀌지 않았다. 김 양의 어머니 이모 씨(41)는 간병에 필요한 물품을 넉넉히 준비했다. 그런데 입원 이틀 만에 김 양을 돌보던 의료진으로부터 “치료가 끝났으니 퇴원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씨는 의아해하면서도 김 양의 옷을 챙겼다. 그런 이 씨에게 간호사가 이유를 설명했다. 간호사는 “의사 선생님들이 들고 다니는 아이패드 덕”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태블릿PC를 통해 연결된 ‘클라우드 기반 모바일 진료정보 시스템’이 입원 치료기간을 일주일에서 이틀로 단축시킨 주역이다.
이 병원 의료진이 들고 다니는 아이패드는 클라우드 기반 모바일 진료정보 시스템에 연결돼 있다. 아이패드 외에도 다른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어떤 정보기기를 이용해도 일반 PC와 똑같은 환경에서 환자 의무기록을 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종전의 모바일 시스템과 비슷하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반은 구름과 같이 다양한 형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끌어 모아 필요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한다. 이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이 병원에도 도입된 것이다. 이달 초 분당서울대병원은 국내 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이 시스템을 설치했다. 의료서비스 혁신이 일어나는 현장을 가 봤다.
○ 병상에서 영상사진-진료차트 본다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은 아직 시험 가동 중이다. 그렇지만 일부 환자는 벌써부터 이 시스템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신경외과 환자들은 진료 기록을 보려면 병실에서 나와 간호사실 데스크톱 컴퓨터로 가 데이터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을 도입한 지난주부터 이런 불편이 사라졌다. 한 환자는 “지난해 편두통으로 입원했을 때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기록을 보려면 간호사실로 찾아갔지만 요즘에는 병실에서 곧바로 영상사진과 진료 차트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병상에서 의료진의 태블릿PC를 통해 진료 이전과 이후의 영상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자신의 상처가 얼마나 치료됐는지 눈으로 확인하며 이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의료진이 들고 다니는 단말기는 환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종전의 단말기는 애플리케이션이 일부만 나와 ‘재원환자’와 ‘타진환자’ 조회 같은 극히 제한적인 정보에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을 도입한 후 이 제한이 대부분 풀렸다. 의료진은 태블릿PC로 본부에 저장된 의무기록을 모두 조회할 수 있다. 이 병원 이비인후과에 입원한 한 환자는 “목구멍에 생긴 염증을 치료한 뒤 내시경으로 찍은 검사결과를 병실에서 직접 확인하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의 설명을 들으니 의료진에 대한 신뢰감도 커지고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 병원 밖에서 호흡-맥박 등 환자상태 점검
지난주 이 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온 환자들은 주치의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응급 진료를 받았다. 응급실에 있던 레지던트들이 신속하게 처리한 것. 간질 중첩증 발작으로 응급의료센터로 실려 온 김 양 또한 전문의가 병원에 오기 전에 정맥 주사와 뇌파 재검사를 받았다. 진료 책임자인 교수가 없는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또한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의 힘이다.
레지던트들은 환자가 오면 즉각 병원 밖에 있는 주치의에게 진단 결과와 병력 자료를 보냈다. 약물에 대한 자료도 보냈다. 병원 밖 회의에 참석하거나 집에서 쉬고 있던 전문의들은 태블릿PC 화면에 뜬 체온과 맥박, 호흡, 혈압 등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이윽고 전문의들은 현장의 레지던트에게 투약을 지시하거나 재검진을 지시했다. 지휘사령탑이 외부에 있지만 응급 진료는 차질 없이 진행됐다.
지금까지는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가거나 의사의 소견이 적힌 복잡한 진료정보는 외부에서 볼 수 없었다. 성능이 뛰어난 병원 내 컴퓨터 화면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시스템이 도입된 뒤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 이 병원 간호사들은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을 설치한 뒤부터 아이패드로 투약 관리나 환자 상태를 조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진료-입원시간 획기적 단축”
종전에는 용량이 한정된 서버와 대형 컴퓨터에서만 자료를 처리할 수 있었다. 태블릿PC는 가상 서버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를 가져온다. 이 때문에 정보처리 속도가 더 빨라졌다. 병원 측은 “의무정보 시스템을 연결하는 부분에서만 속도가 1.5배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정보처리 속도의 향상으로 진단과 진료 모두 가속도가 붙었다. 이 병원의 황희 의료정보센터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진단에서 진료까지 짧은 시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환자들의 대기시간도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병실을 자주 옮겨 다니는 불편이 줄어든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이 병원의 태블릿PC는 환자용이 아닌 의료진용이다. 환자들은 종전처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진료 일정이나 검사받은 이력 등만 조회할 수 있다. 환자들이 의무기록에 접근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병과 관련된 정보라서 법으로 제한했다. 환자들이 병원 밖에서 의료진과 진료 데이터를 주고받는 원격 진료도 법에 묶여 있다.
황 센터장은 “병원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지면 병원 경영비용이 절감되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원격진료로 확대하려면 관련 법 정비도 어느 정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클라우드 컴퓨팅::
사용자가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지 않고도 인터넷 접속을 통해 언제든지 사용하고, 각종 정보통신 기기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사용 환경. 클라우드(cloud)로 표현되는 인터넷상 가상 서버에서 데이터의 저장, 처리, 네트워크, 콘텐츠 사용 등 정보기술(IT) 관련 서비스를 한번에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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