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기반 진료시스템’ 분당서울대병원의 의료혁신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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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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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서 MRI 사진보며 설명 들으니 귀에 쏙~

《김희은(가명·12) 양은 간질 발작이 30분 이상 계속되다 의식을 잃는 ‘간질 중첩증’ 환자다. 25일에도 혼수상태로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실려 왔다. 김 양은 3년 전부터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최근 3일간 무심코 약을 끊었는데 그게 화근이 된 것이다. 평소에는 일단 병원에 들어오면 일주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김 양의 증세나 치료방식도 3년 전과 같았고, 주치의도 바뀌지 않았다. 김 양의 어머니 이모 씨(41)는 간병에 필요한 물품을 넉넉히 준비했다. 그런데 입원 이틀 만에 김 양을 돌보던 의료진으로부터 “치료가 끝났으니 퇴원하라”는 말을 들었다.》
경기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의사가 병실에 있는 환자에게 발뼈를 찍은 X선 영상을 태블릿PC 화면으로 보여주며 치료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의료진의 태블릿PC는 클라우드 기반 진료정보시스템에 연결돼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경기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의사가 병실에 있는 환자에게 발뼈를 찍은 X선 영상을 태블릿PC 화면으로 보여주며 치료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의료진의 태블릿PC는 클라우드 기반 진료정보시스템에 연결돼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씨는 의아해하면서도 김 양의 옷을 챙겼다. 그런 이 씨에게 간호사가 이유를 설명했다. 간호사는 “의사 선생님들이 들고 다니는 아이패드 덕”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태블릿PC를 통해 연결된 ‘클라우드 기반 모바일 진료정보 시스템’이 입원 치료기간을 일주일에서 이틀로 단축시킨 주역이다.

이 병원 의료진이 들고 다니는 아이패드는 클라우드 기반 모바일 진료정보 시스템에 연결돼 있다. 아이패드 외에도 다른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어떤 정보기기를 이용해도 일반 PC와 똑같은 환경에서 환자 의무기록을 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종전의 모바일 시스템과 비슷하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반은 구름과 같이 다양한 형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끌어 모아 필요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한다. 이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이 병원에도 도입된 것이다. 이달 초 분당서울대병원은 국내 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이 시스템을 설치했다. 의료서비스 혁신이 일어나는 현장을 가 봤다.

○ 병상에서 영상사진-진료차트 본다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은 아직 시험 가동 중이다. 그렇지만 일부 환자는 벌써부터 이 시스템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신경외과 환자들은 진료 기록을 보려면 병실에서 나와 간호사실 데스크톱 컴퓨터로 가 데이터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을 도입한 지난주부터 이런 불편이 사라졌다. 한 환자는 “지난해 편두통으로 입원했을 때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기록을 보려면 간호사실로 찾아갔지만 요즘에는 병실에서 곧바로 영상사진과 진료 차트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병상에서 의료진의 태블릿PC를 통해 진료 이전과 이후의 영상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자신의 상처가 얼마나 치료됐는지 눈으로 확인하며 이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의료진이 들고 다니는 단말기는 환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종전의 단말기는 애플리케이션이 일부만 나와 ‘재원환자’와 ‘타진환자’ 조회 같은 극히 제한적인 정보에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을 도입한 후 이 제한이 대부분 풀렸다. 의료진은 태블릿PC로 본부에 저장된 의무기록을 모두 조회할 수 있다. 이 병원 이비인후과에 입원한 한 환자는 “목구멍에 생긴 염증을 치료한 뒤 내시경으로 찍은 검사결과를 병실에서 직접 확인하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의 설명을 들으니 의료진에 대한 신뢰감도 커지고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 병원 밖에서 호흡-맥박 등 환자상태 점검


지난주 이 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온 환자들은 주치의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응급 진료를 받았다. 응급실에 있던 레지던트들이 신속하게 처리한 것. 간질 중첩증 발작으로 응급의료센터로 실려 온 김 양 또한 전문의가 병원에 오기 전에 정맥 주사와 뇌파 재검사를 받았다. 진료 책임자인 교수가 없는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또한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의 힘이다.

레지던트들은 환자가 오면 즉각 병원 밖에 있는 주치의에게 진단 결과와 병력 자료를 보냈다. 약물에 대한 자료도 보냈다. 병원 밖 회의에 참석하거나 집에서 쉬고 있던 전문의들은 태블릿PC 화면에 뜬 체온과 맥박, 호흡, 혈압 등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이윽고 전문의들은 현장의 레지던트에게 투약을 지시하거나 재검진을 지시했다. 지휘사령탑이 외부에 있지만 응급 진료는 차질 없이 진행됐다.

지금까지는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가거나 의사의 소견이 적힌 복잡한 진료정보는 외부에서 볼 수 없었다. 성능이 뛰어난 병원 내 컴퓨터 화면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시스템이 도입된 뒤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 이 병원 간호사들은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을 설치한 뒤부터 아이패드로 투약 관리나 환자 상태를 조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진료-입원시간 획기적 단축”


종전에는 용량이 한정된 서버와 대형 컴퓨터에서만 자료를 처리할 수 있었다. 태블릿PC는 가상 서버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를 가져온다. 이 때문에 정보처리 속도가 더 빨라졌다. 병원 측은 “의무정보 시스템을 연결하는 부분에서만 속도가 1.5배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정보처리 속도의 향상으로 진단과 진료 모두 가속도가 붙었다. 이 병원의 황희 의료정보센터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진단에서 진료까지 짧은 시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환자들의 대기시간도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병실을 자주 옮겨 다니는 불편이 줄어든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이 병원의 태블릿PC는 환자용이 아닌 의료진용이다. 환자들은 종전처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진료 일정이나 검사받은 이력 등만 조회할 수 있다. 환자들이 의무기록에 접근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병과 관련된 정보라서 법으로 제한했다. 환자들이 병원 밖에서 의료진과 진료 데이터를 주고받는 원격 진료도 법에 묶여 있다.

황 센터장은 “병원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지면 병원 경영비용이 절감되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원격진료로 확대하려면 관련 법 정비도 어느 정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클라우드 컴퓨팅::

사용자가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지 않고도 인터넷 접속을 통해 언제든지 사용하고, 각종 정보통신 기기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사용 환경. 클라우드(cloud)로 표현되는 인터넷상 가상 서버에서 데이터의 저장, 처리, 네트워크, 콘텐츠 사용 등 정보기술(IT) 관련 서비스를 한번에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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