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자극 한 번 더 주세요.” 이달 1일 오후 3시 10분경 서울대공원 토종동물복원센터. 용환율 동물연구실장이 소리치자 배복수 주무관이 재빨리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항문에서 10cm 정도 들어간 전기자극기가 ‘히말라야산양’ 수컷의 전립샘을 자극했다. 히말라야산양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 근접종으로 지정한 동물이다. 8년 된 수컷은 48시간째 물을 마시지 못했다. 배 주무관은 “정액이 오줌과 섞여 나오면 정자의 활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물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0V의 전기자극을 받자 전신마취가 된 산양의 복부 포피에서 음경이 부풀어 올랐다. 7초마다 전기자극을 주기 4차례. 음경에서 노란색의 정액이 3mL가량 나왔다. 용 실장은 “1∼2L의 정액을 사출하는 코끼리와 달리 몸집이 작은 산양은 보통 한 번에 2∼3mL를 사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플라스틱 용기에 받은 산양의 정액을 38도로 유지되는 보온병에 조심스레 담았다.》
○ 영하 196도 ‘정자은행’
②서울대공원 연구원들이 히말라야산양 수컷의 전립샘에 전기 자극을 줘 정액을 채취하고 있다.③히말라야산양 수컷은 번식기 때 2∼3mL의 정액을 사정한다.④건강한 정자는 영하 196도로 유지되는 야생동물생식세포은행에 저장된다.얼린 정자는 번식기 때 다시 녹여 암컷에게 주입된다. 사진 제공 서울대공원
연구진은 현미경으로 정액을 100배 확대해 관찰했다. 긴 꼬리를 갖고 있는 정자가 좌우로 활발하게 움직였다. 용 실장은 “히말라야산양은 번식기인 11월 말에서 이듬해 1월 중순에 채취한 정액이 좋다”며 흡족해했다. 번식기가 아닐 때는 고환의 크기가 작아 사정량도 1mL 미만에 그치고 정자의 활력도 떨어진다.
채취한 정액은 야생동물생식세포은행으로 옮겨졌다. 영하 196도로 유지되는 은색 저장고의 뚜껑을 열자 액체질소가 기화되면서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용 실장은 희석액과 섞은 정액을 2시간에 걸쳐 온도를 5도까지 천천히 낮춘 다음 액체질소 증기에 20분가량 쐰 뒤 저장했다.
이렇게 얼린 정액을 번식기가 왔을 때 녹여 암컷 산양에게 주입한다. 현재 이곳에는 풍산개 한국늑대 단봉낙타 등 총 30종의 정액과 6종의 난자가 보관돼 있다. 용 실장은 “사람의 정자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며 “개체 수가 제한된 사육 상태에서는 근친교미가 일어나기 쉬운데 이를 줄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 호르몬 주입해 1년에 여러 번 번식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 근접종으로 분류한 히말라야산양.호르몬으로 자연번식을 유도하기도 한다. 올해 2월 연구진은 IUCN이 관심필요종으로 분류한 코요테 암컷의 생식기 피부 밑에 ‘생식샘자극분비호르몬(GnRH)’이 2.1mg 담긴 임플란트 1개를 붙였다. 이 임플란트에서는 GnRH가 지속적으로 분비된다. 수컷에게는 같은 호르몬 주사를 놨다. GnRH는 암·수컷의 생식샘인 난소와 정소를 자극해 난자와 정자가 성숙해지도록 한다. 이 암컷은 번식기보다 한 달 빠른 4월 건강한 새끼 5마리를 낳았다.
연구진은 10월 같은 암컷에게 GnRH 임플란트 2개를 다시 설치했다. 지난달 교미를 하는 모습이 관찰돼 두 번째 임신을 기다리고 있다. 용 실장은 “1년에 한 번 번식하는 코요테가 다른 시기에 교미를 갖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호르몬을 주입하면 자연번식을 여러 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정자 한 마리로 수정란 만들어
체외수정, 체세포복제 같은 방법도 야생동물 수를 늘리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국내 기술 수준은 코끼리 체외수정에 성공했던 태국의 동물원 등에 비해 아직 낮다는 평가다. 용 실장은 “야생동물 연구자가 적고 정부 지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경우 순수 연구자만 150여 명이지만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대공원은 10명 미만이다.
서울대공원은 앞선 기술을 갖춘 동물원과 경쟁하기 위해 틈새시장을 노렸다. 용 실장은 “정자 한 마리와 난자를 수정시키는 새로운 인공번식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난자 주변에 다수의 정자를 풀어놓아 수정시키는 체외수정법이 사용됐다. 이 방법은 여러 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에 들어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수정란이 만들어지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동물원 측은 정자 한 마리만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이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용 실장은 “활발히 움직이는 정자를 손상 없이 잡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아직 시도된 적 없다”며 “히말라야산양과 삵에게 내년부터 이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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