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스마트TV인 ‘애플TV’를 공개한 애플이 방송사들과 ‘99센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애플은 애플TV 시청자가 드라마나 시트콤 같은 프로그램을 편당 99센트에 볼 수 있도록 방송사와 콘텐츠 공급 협상을 벌이고 있다. 미국 미디어업계는 ‘99센트 전쟁’을 TV 콘텐츠 유통시장을 둘러싼 애플과 방송사의 주도권 싸움으로 보고 있다.
일반 TV 시청자가 방송국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수동적으로 시청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스마트TV는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서 볼 수 있다. 애플TV는 시청자가 콘텐츠를 저장하는 다운로드 방식이 아니라 대여하는 스트리밍 방식이다. 방송사가 애플의 콘텐츠 제공 서비스인 아이튠스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면 애플TV 시청자는 편당 99센트에 48시간 동안 빌려 볼 수 있다. 콘텐츠 판매수익은 애플과 방송사가 3 대 7로 나눠 갖는다.
현재까지 미국 4대 방송사 중 ABC와 폭스만이 애플TV와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ABC는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가 모회사 월트디즈니의 최대 주주여서 일찍부터 프로그램 공급에 참여할 것으로 예견돼 왔다. 폭스는 일부 경영진이 반대했지만 소유주 루퍼트 머독이 “스마트TV에 디지털의 미래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계약을 성사시켰다.
NBC와 CBS는 애플에 프로그램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타임워너, 비아콤 등 다른 대형 콘텐츠 제작업체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대다수 콘텐츠 제작사가 애플에 프로그램을 공급하지 않기로 한 것은 콘텐츠 가치가 너무 낮게 책정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콘텐츠 회사들은 이미 2005년부터 애플 아이튠스에 다운로드 방식으로 편당 1.99∼2.99달러에 프로그램을 공급해왔다. 그런데 애플이 애플TV를 내놓으면서 콘텐츠 가격을 파격적으로 99센트로 낮추자 콘텐츠 제작사들이 이에 맞출 수 없다고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NBC의 제프 주커 CEO는 “우리가 만든 콘텐츠의 가격이 그렇게 낮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송사들은 과거 음악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TV 콘텐츠시장의 지배력을 애플에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애플TV의 등장은 DVD 출시와 케이블위성 판매로 이어지는 방송사의 기존 프로그램 유통 체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또 애플의 아이팟이 앨범 위주였던 음악시장의 판도를 싱글 중심으로 재편했듯이 애플TV는 시청자들이 콘텐츠를 구매하기 편리하도록 TV 제작환경을 단편 에피소드 중심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방송사들은 “애플과의 협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추후 계약 체결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1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빌려 보는 애플TV의 전략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간파하고 이에 맞는 신개념 비즈니스모델을 제시하는 애플의 시장예측 능력은 과거 이미 수차례 적중한 바 있다. 애플의 잡스 CEO는 “(ABC와 폭스 외에) 다른 기업들도 하루 빨리 시장의 변화를 깨닫기 바란다”며 방송사들을 설득하고 있다. 미국 방송사들은 애플이 촉발한 시장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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