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장보고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4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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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5월 24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다윈의 항로를 따라 1년 넘게 해양탐사를 해온 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지난해 말 소개해드렸는데요. 안타깝게도 고지를 목전에 두고 배가 난파됐습니다.

(구가인 앵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항해는 중단된 상탭니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예정대로 항해를 완수하겠다는 권영인 박사를 영상뉴스팀 신광영 기자가 만났습니다.

***

500일 넘게 이어졌던 항해는 마지막 2주를 남겨두고 멈췄습니다.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다윈의 항로를 돌며 지구변화를 연구해왔던 권영인 박사.

미국 아나폴리스에서 출항해 카리브 해와 갈라파고스 제도, 하와이까지 514일 동안 숱한 고비를 넘겨왔습니다.

하지만 종착지인 전남 여수까지 불과 2주를 남겨두고 지난 3월 7일 태평양 웨이크 섬 부근에서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인터뷰) 권영인
"우리 배보다 한 3, 4배 높은 파도가 3번쯤 왔어요. 첫 파도를 보면서 셋 다 놀랐어요. 저 파도 맞으면 죽겠구나. 두 번째 파도를 맞으면서 거의 전복됐어요. 이호근 대원은 배 안에서 부딪히는 바람에 반대편으로 날아가서 부딪히고. 권상수 대원은 그 파도를 맞으면서 운전대 조정하고 있었는데 운전대에 가슴을 쾅 부딪혔죠."

권 박사팀이 탄 장보고 주니어호의 돛대 높이는 10m. 파도는 그 돛대 위로 넘어와 배를 후려쳤습니다.

한순간에 배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파도는 10여 초 간격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인터뷰) 권영인
"셋 다 우리는 죽는다고 생각했거든요. 누구는 욕을 하고 누구는 기도를 하고, 그러는 상황에서 저는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이렇게 내가 1년 반 동안 해온 일이 여기서 이렇게 접는구나. 그동안 비슷한 위기를 몇 번 씩 넘겼는데 그동안 운이 좋았다 생각했는데 이제 그 운이 다 했구나. 차라리 내가 이걸 완수하지 못할 바에는 이렇게 끝나도 난 좋다. 그런 생각도 들긴 했어요."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며 마음의 준비를 할 만큼 10초는 길었습니다.

세 번의 파도를 맞고 배가 90도로 기울어 물이 차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일지 모르는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권영인
"이호근 대원에게 이렇게 물어봤어요. 무섭지 않느냐, 이제 죽는 건데.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느냐. 그랬더니 이호근 대원이 자기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제가 정말 후배지만 굉장히 미안한 마음밖에 없었어요. 두 대원에게. 제가 좀 더 철저히 준비해서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칠흑 같은 어둠에 파도는 높고 바람은 평균 풍속의 세 배 수준인 40~50노트.

높은 파도와 거센 바람. 구조대가 배를 발견한다고 해도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전기로 구조를 요청하자 5분여 만에 회신이 왔습니다.

배가 침몰 중인 곳이 바다 한복판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미군기지가 있는 웨이크섬 연안이었습니다.

미군에게 극적으로 구조된 권 박사 일행은 파손된 배까지 인양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권영인
"거기에서 야자나무 껍질로라도 수리를 해서 나올 각오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거기서 수리 물자만 주면 야반도주를 할 생각이었어. 못 나가게 잡으면 도망쳐서 올 생각이었죠. 수리물자를 안 주는 바람에 이런 상황이 됐고."

미군 측은 민간물자를 군사시설에 들여올 수 없다는 이유로 수리 물자를 대주지 않았고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출항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권영인
"국제 해사법상 모든 조난 선박에서 대해서 수리를 해서 안전하게 출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관례에요. 군사기지도 예외는 아니고. 수리를 해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인데 이 섬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권 박사 일행은 결국 추방돼 4월 1일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미군의 비협조로 항해가 중단된 상태지만 권 박사는 오랜 해양탐사로 적지 않은 과학적 성과를 얻었습니다.

권 박사가 조사한 바다 속 메탄량을 토대로 포스텍 연구팀이 지구온난화와 메탄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권영인
"과거에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다 속 메탄을 측정을 해보니까 굉장히 높은 값을 일부 지역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닷물에 상당히 많은 양의 메탄이 분출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지구 온난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권 박사는 항해 완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정박해있는 웨이크 섬 근처를 지나가는 선박을 구해 배를 인근 섬으로 옮긴 뒤 수리를 하고 여수항으로 향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권영인
"(웨이크 섬까지 가는 배를 구하는 게) 아직까지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설사 이것이 불가능해진다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지고 나올 생각이고 그마저 불가능해진다면 배를 만들어서라도 마지막 구간을 완수할 생각입니다."

동아일보 신광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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