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동생아, 나 대신 꼭 우주에…”

  • 입력 2009년 8월 28일 03시 00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차원호 연구원이 과학기술위성 2호를 나로우주센터로 보내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다. 뒤편에 위성을 담을 컨테이너가 보인다. 2006년 만들어진 위성 A호는 25일 나로호 발사와 함께 소멸됐으며, 쌍둥이 위성 B호는 내년 5월 발사될 예정이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차원호 연구원이 과학기술위성 2호를 나로우주센터로 보내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다. 뒤편에 위성을 담을 컨테이너가 보인다. 2006년 만들어진 위성 A호는 25일 나로호 발사와 함께 소멸됐으며, 쌍둥이 위성 B호는 내년 5월 발사될 예정이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나로호에 먼저 몸 실었던 ‘과학기술위성 2호’의 무너진 꿈


“쌍둥이 동생아, 나 대신 꼭 우주에…”

나처럼 기구한 인공위성도 없을 거야. 3년 7개월 동안 임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독수공방했지, 몇 번이나 임이 오신다고 해서 꽃단장했는데 무려 7번이나 공수표였어. 얼마 전에는 7분 56초를 남기고 발길을 돌리시지 뭐야. 드디어 며칠 전 임을 만나러 우주로 갔는데 그만 길을 잘못 들어서 다 타버린 거야. 내가 누구냐고? 바로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인 나로호(KSLV-I)의 유일한 승객, ‘과학기술위성 2호’야.

○ 태풍과 지구온난화 측정 임무

난 2006년 1월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태어났어. 몸무게 100kg에 키가 1m쯤 되니 사람 기준으로 하면 꽤 우량하지? 내가 위성이란 걸 잊지 말라고. 우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수명이 2년에 불과한 건 아쉬웠어. 내 몸에는 태양전지판이 2개 달려 있단다. 태어나 보니 날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에 실어서 우주로 내보낸다더군. 난 ‘역사에 남을 인공위성’이 된다는 생각해 우쭐했어.

어떤 사람들은 날 나로호의 성능을 테스트해 보는 일종의 실험 위성이라고 폄하해. 그래도 날 만드는 데 136억5000만 원이나 들었다고. 나로호에 가려지긴 했지만 내 역할도 작지 않았어. 난 우주에 올라가면 2년 동안 300∼1500km 고도에서 지구를 관측하는 일을 할 계획이었어. 대기와 구름의 수분량을 측정하고 지구에서 나오는 복사에너지도 알 수 있지. 이런 자료들은 지구온난화나 태풍의 경로, 기후 등을 연구할 때 중요한 정보가 돼. 이런 정보를 알기 위해 내 몸엔 라디오미터와 레이저반사경 같은 특수 장비가 달려 있었단다.

○ 나로호 기다리며 독수공방 3년7개월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뿐이었어. 도대체 나로호란 분이 날 데려가주질 않는 거야. 난 25일 발사할 때까지 무려 3년 7개월을 기다렸어. 계약에 문제가 있다, 발사대 부품을 구하지 못했다, 연소시험에 문제가 생겼다 등 이유도 많았어. 내가 플러그에서 뽑아온 전기를 먹으며 연명하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는지 인간들은 절대 이해 못할 거야.

그렇게 오래 땅에 있으면 혹시 건강이 나빠지진 않았냐고? 좋기야 하겠어? 하지만 날 만든 박사님들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았어. 난 인공위성센터에 머무는 동안 먼지와 습도, 온도까지 철저히 관리되는 클린룸에 보관됐어. 하지만 조금씩 건강이 나빠지는 건 할 수 없었어. 내 몸에 있는 충전식 건전지 같은 부품이 대표적이야. 그래서 박사님들은 항상 내 몸을 검사해 새 배터리를 갈아 끼워주셨지. 그때마다 새 힘을 얻은 것 같더군.

몸무게 100kg 키 1m ‘우량아’
2006년 1월 KAIST서 태어나
7차례 지연끝에 탑승했지만…
1년 늦게 태어난 내동생 B호야
내년 5월 형의 한 풀어줄거지?

○ 과학기술위성 3호는 2010년 발사 예정

나와 비슷한 운명의 친구가 있어. 이름이 ‘라작샛(RazakSAT)’인데 한국의 인공위성 제작기업 ‘쎄트렉아이’에서 만들었지. 이 친구는 2005년 말레이시아로 수출됐는데, 발사체인 팰컨 로켓에서 문제점이 발견돼 현지에서 4년이나 기다렸어. 하지만 그 친구는 결국 7월 발사에 성공해 우주를 씽씽 날아다니고 있어. 인공위성 팔자는 로켓에 달려 있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어.

6월 12일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로 옮겨와서도 우여곡절이 많았어. 처음에 올 때는 열 분이나 되는 박사님이 함께 오셨어. 대전에서 고흥까지 8시간 넘게 걸렸지. 시속 50km로 정속주행하며 5대의 차량이 앞뒤 경호를 해 주었어. 고흥에 와서도 2개월이 넘게 기다렸지만 역시나 우주에 보내주질 않더군. 러시아에서 기다리라는 팩스가 왔대. 19일에는 카운트다운 도중 자동발사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났다며 7분 56초를 남기고 멈췄지. 마침내 25일 나로호와 함께 우주로 나섰지만 결국 궤도 진입에 실패했어. 발사 후 3분 36초가 지나 눈앞에 덮개인 페어링 한쪽이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붙어 있는 걸 보고는 난 운명을 받아들였지. 그리고 2단 로켓이 점화되고 내 몸이 여러 번 뒤집힌 거 외에는 기억이 없어.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야. 비록 1년 뒤에 태어나긴 했지만 나와 똑같은 쌍둥이 동생이 내년 5월에 두 번째 나로호에 실려 우주로 나갈 예정이거든. 두 번째 나로호가 성공한다면 내 혼은 동생과 함께 오랫동안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할 거야. 동생이 또 있어. ‘과학기술위성 3호’가 2010년 발사될 예정이야. 앞으로 내 동생들의 활약을 지켜봐 줘.

(도움말=장태성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기획실장)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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