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나노튜브… 그래핀… 나노버블… 나노소재 ‘춘추전국시대’

  • 입력 2008년 8월 29일 03시 03분


‘나노기술’ 하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용어로 ‘탄소나노튜브’라는 단어가 있다. 이 튜브 모양의 탄소 덩어리는 나노 분야에서 가장 촉망받는 소재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탄소나노튜브는 그간 누려왔던 맹주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형태가 약간만 바뀌어도 전기적 성질이 바뀌는 등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한계가 드러나자 이를 극복할 새로운 형태의 물질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 나노소재의 춘추전국시대가 온 것이다.

○ 스카치테이프 떼다 우연히 발견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의 세상을 보는 전자현미경으로 연필심을 확대해 보면 켜켜이 쌓인 얇은 판(단원자층)이 관찰된다. 탄소들이 판 형태로 얽혀 있는 ‘그래핀(graphene)’이라는 물질이다.

그래핀을 통과하는 전자는 초당 105m 속도(빛 속도의 300분의 1)로 흐른다. 이를 띠 모양으로 얇게 자르면 전자가 흐르는 도선으로 쓸 수 있다. 형태가 조금만 바뀌어도 전기적 성질이 바뀌는 탄소나노튜브보다 훨씬 안정적이란 평가를 듣는다.

그래핀의 탄생 배경은 꽤 흥미롭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나노튜브를 넓게 편 모양의 그래핀의 존재를 예측해왔다. 그래핀은 스카치테이프에서 처음 발견됐다. 검댕을 넓게 펼친 뒤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면 얇은 단원자층의 탄소 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그래핀이다.

최근 들어서는 그래핀을 이용해 전기회로에 사용될 전자소자를 직접 만드는 시도가 늘고 있다. 그래핀에 산소를 반응시키거나 얇게 리본 형태로 자르면 전기적 성질이 좋은 전기도선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그래핀으로 일반 반도체보다 저장 용량이 큰 컴퓨터 칩과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는 그래핀으로 분자 하나를 감지하는 정밀 센서를 만들었다는 논문이 소개되기도 했다.

○ 1년간 꺼지지 않는 미세 거품 ‘나노버블’

미국 하버드대 하워드 스톤 교수팀은 5월 30일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지름이 수백 nm 크기의 탄소 거품을 만들었다는 것.

연구팀이 사용한 장치는 다름 아닌 부엌용 믹서였다. 보통 수백 nm 크기면 금방 터져 버리지만 이 거품은 1년 이상 형태를 유지한다.

거품이 오래 유지되는 비결은 모양에 있다. 거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50nm 미만의 5각형과 6각형, 7각형 탄소들이 서로 맞물린 축구공 형태를 띤다.

작은 나노거품이 모여 거품이 터지지 않도록 안정적인 구조를 만든 것이다.

제조 방법은 다국적 식품회사 유니레버의 로드니 비 박사의 아이디어에서 따왔다. 아이스크림은 만들 때 작은 거품이 많을수록 고품질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작은 거품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로 나온 아이디어였다.

과학자들은 이 반영구적인 거품을 공기 중으로 쉽게 퍼져버리는 탄산가스 제품이나 초음파 조영제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나노물질의 춘추전국시대

이중으로 된 탄소나노튜브, 그래핀을 잘라 만든 나노리본, 유전자와 금속나노입자를 결합해 만든 유전자(DNA)나노입자, 분자 한 가닥으로 만든 나노선 등 다양한 소재도 주목을 끌고 있다.

3월 영국의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도 변형된 나노튜브, 나노선, 풀러렌, DNA나노입자 등 4개 소재를 앞으로 주목받을 물질로 꼽았다.

물론 새로운 소재들 역시 대량생산 문제, 비용, 기술적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조원 테라급나노소자연구단장은 “최근의 연구 흐름은 전자의 움직임이 아니라 빛과 스핀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다”며 “여러 가지 나노소재도 결국 이런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한두 가지 소재만이 경쟁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노 기술:

10억분의 1m인 nm 크기에서 물질을 조작하는 기술. 차세대 메모리와 태양전지, 치료용 약물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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