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핫이슈]‘환자 프렌들리’ 언제쯤…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실제 있었던 얘기다. 파킨슨병에 걸린 50대 남성이 찾아왔다. 중견회사 사장이기도 한 그 환자는 파킨슨병이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하는 상황이었다.

환자는 “사업상 명함을 내밀 때 손이 심하게 떨리고, 젓가락질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중요한 식사 자리에서 실수도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약을 먹어도 증세가 좋아지지 않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분야 최고 전문가를 찾았던 것이다.

“갑자기 이런 병이 생겨서 사업과 가정생활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밤에 잠도 안 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걱정 안 하고 사시려면 망우리 가셔야죠.”

“예?”

환자는 진료실을 나오고 난 후에야 ‘망우리’가 서울에서 큰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채 3분도 안 되는 진료시간 동안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그 의사의 무관심한 태도는 환자에게 큰 충격이었다. 환자는 다시는 그 의사를 찾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의사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힘드시겠지만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최근 모 대학병원이 아이의 팔에서 정맥유도관을 제거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려보내 물의를 빚었다. 그 자체로는 생명에 지장이 없고 장애를 유발하지 않으므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문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른 병원에 가서 뽑으면 된다”고 답한 병원 측의 무성의한 태도다. 화가 난 아이의 부모를 진정시키고 좀 더 친절하게 응대했다면 이렇게 큰 비난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은 “내 부모 형제 대하듯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전 한 나절 동안 5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상황에서 친절하고 따뜻한 태도까지 보여주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하루 5명 내외의 예약 환자를 보고, 한 환자를 보는 데 1시간을 투자해도 병원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나 의사의 역할은 단순히 환자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심정적 교류’를 하는 것도 포함된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덜어줘야 하는 것이다.

최근 국내 의료계에서도 ‘환자를 보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자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설명 잘 하는 의사되기’라는 책을 번역해 의료 현장에서 실천하는 의사들이 있는가 하면, 서울대 의대, 을지대 의대, 울산대 의대 등은 의료윤리학 과목으로 개설했다.

진료, 교육, 연구 등을 병행하느라 의사들은 바쁘다. 그러나 몸이 아파 찾아오는 환자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