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의 혁명… ‘바보상자’가 떨고 있다

  • 입력 2007년 2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1. 2007년 2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직장인 김모(40) 씨는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TV 보지 말고 공부해라”고 말한다. 김 씨는 아이들이 잠든 뒤에 볼륨을 최대한 낮춰서 TV를 시청한다. 아이들 공부에 방해가 되는 TV를 없애고 싶지만 드라마 마니아인 김 씨는 아직까지 거실에서 TV를 치우지 못하고 있다.

#2. 2012년 2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사는 주부 박모(39) 씨는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TV 보지 말고 공부해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주로 시내 유명학원의 과외방송을 보기 위해 TV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과외방송은 쌍방향 기능이 있어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채팅으로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다. 박 씨 자신은 요리 프로그램을 즐긴다. TV는 조리법을 텍스트 문서로 제공하고, 화면의 요리 재료를 클릭하면 홈쇼핑으로 연결해 준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지난달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앞으로 5년 뒤에는 사람들이 우리가 현재 TV를 보는 방식에 대해 웃음을 금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과 TV의 결합이 불러올 ‘TV 혁명’이 TV의 기능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청자가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생산, 유통, 소비하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가 열리게 된다는 뜻이다. ‘TV 혁명’으로 기존 TV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TV 기능의 무한대 확장

인터넷과 TV의 결합은 통신과 방송의 결합을 통해 TV의 기능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 회선과 TV 수상기를 연결하는 IPTV는 세계적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IPTV는 주문형 비디오(VOD)뿐만 아니라 온라인 뱅킹과 홈쇼핑, 인터넷 서핑 등 통신과 방송을 융합한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박팔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터넷과 결합된 TV는 집안의 다른 전자기기를 제어하는 홈 서버 역할도 할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IPTV가 가정 정보화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과 TV의 결합은 콘텐츠 측면에서 ‘무한채널’의 등장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넷에서는 이론적으로 무한대의 방송 채널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방송 소프트웨어인 Orb나 인터넷 방송서비스인 아프리카(afreeca)를 활용하면 개인도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할 수 있다.

무한채널은 콘텐츠 유통의 국경이 무너지는 것도 의미한다. 앞으로 어느 나라의 프로그램이든 자유롭게 시청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국내 누리꾼들은 현재 국내에 방영되지 않는 외국 드라마에 자막을 붙여 인터넷에서 배포하고 있다.

○ ‘바보상자’와 일방향 방송의 종말

“인터넷과의 결합은 TV를 엔터테인먼트 도구에서 보다 종합적인 미디어로 바꿀 것입니다. 단순히 오락거리만을 보여주는 ‘바보상자’가 아니라 교육과 정보, 쌍방향 인터넷 기능까지 제공하는 ‘종합 생활기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영희 KT 미디어본부장은 “TV 혁명이 가져올 변화는 무궁무진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특히 통신과 방송이 융합해 TV란 매체 자체의 성격이 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TV 혁명의 핵심 중 하나는 다수의 시청자들이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방송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선택해 원하는 시간에 보게 된다는 점이다.

즉 대중을 대상으로 한 방송,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이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 내로캐스팅(Narrowcasting)으로 변하고 있다고 이 본부장은 덧붙였다.

시청자들이 방송에 직접 참여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방송을 만드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KT가 준비 중인 IPTV 서비스에는 시청 중인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들끼리 채팅으로 의견을 나누거나, 방송 중에 온라인 투표에 참여하는 기능이 들어 있다.

○ 기존 TV 광고 시장도 위축 가능성

콘텐츠의 다양화와 방송의 개인화는 기존 TV 방송사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것으로 보인다. TV 방송이 휘둘렀던 ‘대량 전달’이란 위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인터넷의 영향으로 4대 방송 네트워크인 CBS와 ABC, NBC, 폭스(Fox)가 매년 최저 시청률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지난해 7월의 경우 프라임 타임(오후 8∼11시) 시청자수는 2008만 가구로 이전의 최저 기록인 2005년 7월의 2150만 가구보다 142만가구가 줄었다. 이 같은 추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손수제작물(UCC) 인터넷 사이트인 유튜브의 방문자 규모는 지난해 6월 기준 1960만 명으로 6개월 동안 297%나 늘어났다.

기존 TV 방송의 ‘콘텐츠 유통 구조’도 위협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정보기술(IT) 뉴스사이트 시넷(CNET)은 “콘텐츠 회사들이 방송사를 통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직접 개인 시청자들에게 프로그램을 공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향력의 감소는 기존 TV 광고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앞으로 TV 광고도 개인의 입맛에 맞는 맞춤광고 같은 대안 모델을 찾지 않으면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보급에서는 세계 최고이지만, IPTV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반면 한국보다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등 세계 40여 개국 200여 개 사업자들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IPTV 서비스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 IPTV 서비스가 지지부진한 것은 방송진영과 통신진영의 갈등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IPTV 상용화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실현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