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신장암’ 킬러의 진화는 계속된다

  • 입력 2006년 11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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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부퍼탈 시에 있는 바이엘 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170만 건의 화학구조물을 저장한 ‘컴파운드 라이브러리’를 소개하고 있다. 부퍼탈=이권효 기자
독일 부퍼탈 시에 있는 바이엘 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170만 건의 화학구조물을 저장한 ‘컴파운드 라이브러리’를 소개하고 있다. 부퍼탈=이권효 기자
■獨바이엘 연구소 가 보니

어느 암이나 그렇지만 신장암은 특히 무섭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 게다가 자각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초기 발견이 어려워 나중에는 수술조차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는 환자가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땅한 항암제도 없었다.

최근에는 이런 신장암도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다중표적항암제’가 등장하면서다. 다중표적항암제는 암세포만 공격(표적)하되 주변 혈관생성을 억제해 암세포로 가는 영양공급까지 차단(다중)한다.

다중표적항암제의 선두 주자가 바로 한국에서도 시판(7월)에 들어간 독일 바이엘사 신장암 치료약 ‘넥사바’. 넥사바는 진통제로 두통을 멈추게 하는 것처럼, 수술밖에 방법이 없던 암을 약으로 해결하는 날을 예고하고 있다.

넥사바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암세포 크기가 자라지 않거나 줄어드는 효과가 최대 80%에 이르는 것으로 나왔다. 알약이어서 말기 신장암 환자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달 초 넥사바를 탄생시킨 독일 바이엘 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컴파운드 라이브러리’. 신약 개발을 위한 화학구조물을 관리하는 일종의 도서관이다. 연구원들이 새로 만든 화학 구조물을 이곳으로 보내면 로봇이 자동으로 분류 저장하는 시스템으로 하루 20시간 가동된다.

1995년 9만 건이던 컴파운드(신물질)는 지난해 172만 건까지 늘었다. 넥사바도 이 라이브러리에서 개발됐다. 10여 년 동안 1200억 원을 투입해 20만 건의 컴파운드를 대상으로 결합과 분리를 계속한 끝에 ‘히트작’이 나온 것이다.

2000년 임상을 거쳐 2005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 허가신청을 낸 지 6개월 만에 허가가 났다. 신약 허가가 보통 12개월, 길게 2∼3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넥사바의 효과는 10일 체코 프라하 코린시아 타워호텔에서 유럽과 미국의 암 전문가 8명이 참가한 가운데 ‘넥사바, 신장암, 표적치료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입증됐다. 미국 뉴욕 메디컬 센터 재니스 더처 박사는 “최근 넥사바의 단독 치료요법 외에 기존 치료제들과의 병용요법을 통한 치료효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다양한 암에 대한 효과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학회에 참가한 서울아산병원 혈액종양내과 강윤구 교수는 지난달 필리핀 항암전문가를 대상으로 임상실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신장암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넥사바가 희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100년 전에도 바이엘사가 개발해 ‘지구촌의 진통제’로 자리 잡은 아스피린이 진화를 거듭해 심혈관 질환 약으로 FDA 승인을 받은 것과 똑같이 이제 넥사바는 신장암을 넘어 간암과 피부암 치료약으로 진화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부퍼탈·프라하=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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