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 이용 연구 급증… 내년도입 4호의 성능은?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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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국내 처음 도입된 슈퍼컴퓨터 ‘크레이-2S’(왼쪽). 현재 운영되고 있는 슈퍼컴퓨터 3호기의 2000분의 1 수준의 성능이었지만 폴리머(오른쪽 사진) 연구나 천체물리학처럼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연구원들에겐 ‘단비’ 같은 존재였다.
1988년 11월 국내 처음 도입된 슈퍼컴퓨터 ‘크레이-2S’(왼쪽). 현재 운영되고 있는 슈퍼컴퓨터 3호기의 2000분의 1 수준의 성능이었지만 폴리머(오른쪽 사진) 연구나 천체물리학처럼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연구원들에겐 ‘단비’ 같은 존재였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임지순 교수는 얼마 전 대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는 슈퍼컴퓨터의 덕을 톡톡히 봤다. 수소를 고체상태로 저장하는 새로운 물질의 구조를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밝혀냈기 때문이다. ‘폴리머(중합체)’와 금속 등으로 이뤄진 수백 가지 구조 가운데 수소가 가장 잘 달라붙는 경우를 찾아낸 것. 이때 사용된 것이 바로 연구용 슈퍼컴퓨터 3호다. 슈퍼컴퓨터란 보통 프로세서가 100개를 넘는 고성능 컴퓨터를 일컫는다. 올해로 연구용 슈퍼컴 3호가 그 수명을 다하면서 최근 슈퍼컴 4호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앞으로 5년간 한국의 과학기술을 이끌 슈퍼컴 4호의 성능은 어떤 수준일까.》

○ 원자구조 천문학적 숫자조합 계산에 활용

임 교수는 슈퍼컴퓨터에 명령해 10가지 중합체마다 수소를 유인하는 바나듐, 니켈, 철, 티타늄 등 10가지 금속을 번갈아 붙여 보았다. 그리고 수소가 금속에 붙는 위치 10곳을 정한 뒤 분자 사이의 거리를 바꿔 가며 수소가 가장 잘 붙는 경우를 찾았다. 계산 결과 폴리머에 뭉치지 않게 분산시켜 티타늄 원자를 달았을 때 가장 잘 붙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처음 컴퓨터에 입력된 조합은 1000가지에 불과하지만 슈퍼컴퓨터로 한 달을 꼬박 돌려야 할 정도로 계산량은 엄청났다. 수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에서 수십 nm 떨어진 분자와 분자 사이 위치와 주변 조건이 바뀔 때마다 수소가 달라붙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금속과 수소의 위치를 일일이 바꿔가며 확인했다면 수십 년이 걸려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계산량은 CD 1500장에 해당하는 1TB(테라바이트· 1TB는 1조 b)를 훌쩍 넘길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수소자동차 개발에 활용될 수 있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실용화에 성공한 연구 사례로 인정받으며 국제 저널 ‘피지컬 리뷰 레터’ 8월 4일자에 실렸다.

지난해 우주의 진화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규명한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의 연구도 슈퍼컴퓨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연구다.

박 교수는 거대한 정육면체의 가상공간에서 우주가 지금까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컴퓨터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박 교수는 한 변이 260억 광년(1광년은 9조 km)인 정육면체 안에 놓인 입자 86억 개가 은하로 발전하는 과정을 계산하기 위해 펜티엄급 프로세서 128개와 900GB(기가바이트) 메모리를 3개월간 돌렸다. 260억 광년은 우주 전체 길이의 절반에 해당하는 엄청난 거리다.

여기서 얻은 자료만 CD 1만 장에 해당하는 9TB, 풀어낸 방정식 해의 수만 1118억 개였다. 이는 신문지를 높이 20km 이상 쌓은 것과 맞먹는 수준의 정보량. 박 교수의 연구는 지금까지 슈퍼컴퓨터로 진행된 국내 연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꼽힌다.

국내 연구용 컴퓨터 가운데 세계 500위권에 드는 컴퓨터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기상청, 서울대 등에 설치된 3, 4대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성능이 가장 좋은 기상청 슈퍼컴퓨터(세계 22위)의 계산 능력은 18.3테라플롭스(1테라 플롭스는 초당 1조 번 연산). 1초에 18조3000억 번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수준이다.

○ 국내 3, 4대에 불과… 기상청용 성능 세계 22위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미국 에너지부 ‘이서버블루진솔루션’의 계산 능력은 367테라플롭스로, 국내 슈퍼컴퓨터의 계산능력을 모두 합친 144테라플롭스보다 2배 이상의 성능을 발휘한다.

내년 상반기에 도입할 슈퍼컴퓨터 4호의 계산능력은 최소 30테라플롭스로, 임 교수와 박 교수가 연구에 사용한 3호보다 7, 8배 높은 수준의 성능이다. 연구용 슈퍼컴퓨터 3호는 4.3테라플롭스다.

슈퍼컴퓨터 4호는 2년 뒤 200테라플롭스로 성능이 다시 한 번 더 올라간다. 그 안에 들어가는 중앙연산처리장치(CPU) 수도 펜티엄급 프로세서 1만 개.

KISTI 슈퍼컴퓨터센터 운영팀장을 맡고 있는 김중권 박사는 “신형 슈퍼컴퓨터를 들여오면 늘어나는 용량만큼 사용할 수 있는 연구자 수가 비례해서 늘고 같은 계산에 쏟는 시간이 반비례로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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