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냘픈 어린 생명들 ‘조마조마’

  • 입력 2006년 7월 4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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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산한 이모(34) 씨는 조산한 아이를 돌보기 위해 2개월 이상 서울에서 충남 천안시의 한 대학병원으로 출퇴근해야 했다. 그는 조산기가 있자 평소 산전 관리를 담당했던 서울 S병원으로 달려갔으나 미숙아를 살릴 수 있는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이하 집중치료실)이 꽉 차 천안시까지 가서 출산해야 했다.

지난달 초 임신 34주 만에 아이를 낳은 박모(35) 씨도 집중치료실을 찾아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고령출산, 인공수정 등으로 미숙아 출생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집중치료실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산모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고령화 문제로 고민하는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해 1000명 이상 죽어간다”=신생아가 급격히 줄고 있지만 집중치료실을 필요로 하는 미숙아(37주 미만 또는 체중 2.5kg 미만)의 출생률은 오히려 늘고 있다. 1.5kg 미만의 극소 미숙아 출생률은 1994년 0.14%에서 2004년 0.38%로, 2.5kg 미만의 미숙아 출생률은 2.77%에서 4.13%로 급증했다.

대한신생아학회는 죽은 아이의 수가 누락되기 쉬운 통계청 수치보다 훨씬 많은 6∼8%의 신생아가 미숙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신생아의 1%는 보육기, 인공호흡기, 맥박산소계측기, 전문의 등을 갖춘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1%는 선진 각국 통계에서도 입증된 수치다.

학회 측에 따르면 극소 미숙아의 생존율은 병원별로 최저 60%, 최고 90%대로 30%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생존율 90%대는 10개 미만이다. 미숙아(1.5kg 이상)의 생존율은 대부분 95% 이상이다. 집중치료실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생존율이 달라진다.

울산대 의대 신생아과 서울아산병원 김기수 교수는 “연간 신생아 43만 명 가운데 극소 미숙아가 4300여 명인 만큼 치료의 질만 높여도 1000명(0.30×4300=1290명) 이상을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통계상의 추정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집중치료실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치료받지 못해 숨지는 미숙아가 많을 것으로 학회 측은 보고 있다.

▽거꾸로 가는 현실=하지만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해 초 강원 강릉의료원이 신생아실을 없애는 등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한신생아학회가 올해 4∼6월 전국 종합전문병원 43곳 등 총 95개 병원을 대상으로 인공호흡기를 갖춘 집중치료실의 병상 수를 조사한 결과 신생아 대비 필요 병상 473개의 56%(274개)에 불과했다.

정부는 의원급 이상 병원(병상 30개 이상)의 집중치료실 병상은 총 503개(106%)여서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학회 측은 “집중치료실의 병상이 한두 개에 불과한 병원은 필요 인력과 장비를 갖출 수 없어 미숙아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원급 이상 병원을 모두 포함해도 부산경남 지역(69%) 등 집중치료실의 필요병상 비율이 100%에 훨씬 못 미치는 곳이 많다.

▽왜 이런 일이?=집중치료실의 부족은 보험수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의료계는 집중치료실의 하루 입원비 원가를 23만 원으로 추정하지만 현재 보험수가는 대학병원을 기준으로 최초 입원부터 15일까지 10만2770원, 15일 뒤부터는 9만2490원이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연간 적자가 병상별로 최대 5000만 원이 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연세대 의대 이철 교수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35개 병상의 집중치료실을 전담하는 의료진이 모두 46명으로 현재 수가로는 이들의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역별 집중치료실 중점 병원 육성해야=서울대 의대 김한석 교수는 “미숙아는 출생과 동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인체 손상이 심한 만큼 지역별로 거점 병원을 육성하고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1976년부터 신생아와 산모를 체계적으로 이송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또 집중치료실의 장비와 인력 수준에 따라 병원을 3개 등급으로 나누고 이 병원의 병실 현황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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