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포터/게임]가치관 붕괴 초래하는 온라인게임 문화

  • 입력 2000년 5월 23일 11시 32분


"내가 다시 온라인 게임하면 사람이 아냐!"

일산 근처에 있는 모 PC방에서 우연히 알게된 회사원 K씨는 게임 중에 갑자기 일갈했다.

급작스런 상황에 놀라 그의 화면을 쳐다보던 중 경악을 금치 못했다. K씨는 최근 폭발전인 인기를 끌고 있는 '포트리스2'라는 게임을 하던 중이었는데, 화면 상에는 입이 떡 벌어질만한 욕설이 계속 뜨고 있었다. 30대를 넘긴 K씨로서는 얼굴을 볼 수 없는 상대방이 분명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 정도 같은데, 반말은 기본에 심한 욕설들이 계속 날아오자 격분했다.

계급이 서로 달라 (포트리스2에는 처음 시작하면 해골 계급장에서 시작해서 승률이 늘어날수록 별, 메달 등으로 계급이 올라간다) 같이 게임을 할 수 없으니 나가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던 K씨에게 상대방이 반말과 욕설로 응대하면서 결국에는 상상하기 힘든 말들이 오고 가게 되었다.

욕설방지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 욕설을 채팅창에 표기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사용자들은 저마다 교묘한 방법으로 방지 프로그램을 피해 심한 말들을 능란하게 사용하고 있다.

자리를 일어서면서 K씨는 "도대체 요즈음 아이들에겐 최소한의 도덕관념도 없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말로 자신이 순간적으로 울컥했던 상황에 대한 미안함을 무마하며 자리를 떴다.

최근 1~2년 사이 온라인 게임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NC소프트의 '리니지'는 사용자수 150만을 넘어섰고, 94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온 넥슨의 '바람의 나라'도 그 사용자가 100만을 넘어섰다.

올해들어 온라인 게임의 주사용층인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층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포트리스2'는 다른 상용 온라인 게임과는 달리 무료라는 점과 단순한 키조작으로 최단기간에 사용자수 200만을 넘어섰다. '포트리스2'의 경우, 두달만에 서버의 수를 두배로 늘려 가동하고 있음에도 피크타임에는 네트워크 체증 현상에 시달릴 정도이다. 또 성인층을 주대상으로 하는 고스톱과 바둑관련 온라인 게임도 사용자수 100만을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폭증 현상이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 오는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N세대라는 말이 이젠 낮설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이 네트워크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기성세대가 인정하지만, 막연하게 '세대간의 갭' 정도로만 우려해 왔던 걱정이 가치관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선 '익명의 공간을 방어막으로 이용하여 사이버 범죄'가 공공연히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즉, 실제적인 재산피해가 아니기 때문에 실정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반사회적인 행동을 용인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 사이버 머니나 게임내 재산을 절취하는 행위, 차마 뱉어낼 수 없는 모욕적인 욕설, 성추행에 버금가는 언행들이 아무런 제재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MS에서 서비스하는 채팅방의 경우 노골적인 성적 접근과 거래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성행한다.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과감한 일탈행위에 대해 공권력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방치된 상황에서 우리 청소년의 가치관은 그 보급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붕괴되어가고 있다.

98년부터 2000년까지 대략 총 600만 이상의 가구에 ADSL 등 초고속 통신망이 보급될 것으로 전문가는 추산하는데, 이러한 환경이 가치관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동시에 조성해주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실정법의 정비와 더불어 학교교육에서 새로운 시대적 환경에 부응한 가치관 교육이 교과과정으로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박현식 <동아닷컴 인터넷기자> hyunp@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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