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젊음은 「별자리」로 통한다

  • 입력 1998년 3월 2일 20시 08분


젊음은 별자리로 통한다. 별을 헤며 사랑과 우정과 어머니를 노래해본 적은 없을지언정 별자리 운세를 안보는 신세대는 드물다. 요즘 10, 20대는 사주나 토정비결보다는 여성잡지만 펼치면 언제든 볼 수 있는 별자리점을 훨씬 친숙하게 느낀다.

특히 취업과 진로선택 고민이 많은 IMF시대, 점성술을 통해 앞날을 훔쳐보려는 젊은이들도 한 둘이 아니다.

K대 경영학과 김세욱씨(23). 고용불안시대에 샐러리맨이 되긴 싫어 사법시험을 준비 중이다. ‘언젠가 붙긴 붙을 수 있는 걸까…’계속되는 고민.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신세대역학연구소를 찾아 별자리점을 봤다. “판단력 비판력 분석력이 뛰어난 성품이라 법조인이 적성에 잘 맞겠고….” 계속되는 점괘. 2000년 별자리가 양자리인데 김씨는 처녀자리. 서로 조화되는 별자리다. “2차시험에 한번 떨어진 뒤 결국 2000년에 붙을 것”이라는 희망찬 점괘에 김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신세대역학연구소 송병창소장(36). “IMF시대가 되면서 취업과 진로문제로 찾아오는 대학생이 대폭 늘었다.”

‘사랑’도 별자리점의 인기 주제. 애인과 함께 찾아온 박연숙씨(24·여). 3개월 전 이곳에서 별자리점을 본 결과 ‘25일이 좋은날’이라는 점괘를 받았던 단골손님. 실제로 그날(일부러 소개팅 날짜를 조정했는지는 몰라도) 현재의 애인을 소개받아 사귀다 결혼을 결정한 것. 그러나 두 사람의 별자리를 본 송소장은 결혼을 말렸다. 남자(28)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성격에 안정된 가정을 갖길 원하는 황소자리. 그러나 박씨는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성향의 전갈자리인 것. “두 분은 연애만 하라”는 송소장의 권고에 고개를 갸우뚱.

신세대가 많이 모이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2일 오후 동아일보취재진이 만난 젊은이 중에 자신의 별자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월생으로 자신이 염소자리라는 오모양(23). “여성잡지를 사면 제일 먼저 별자리 운세를 봐요. 행운의 날은 수첩에 써넣고 다니고 남자친구하고 별자리궁합도 봤어요.”

별자리운세, 즉 인스턴트 점성술에 젊은이들이 친근감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신세대들의 설명. “양력으로 따지니까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림이 예쁘고 단어도 재미있어요.” “왠지 사주는 어려운 것 같고 한자가 싫어요.”

점성술연구가 유기천씨(47). “서구적 사고방식으로 교육받은 신세대에겐 원리가 심오하지만 난해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동양운명학보다는 구체적인 별들의 배치에 기반을 둔 서양점성술의 원리가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여성잡지의 영향도 크다. 수년전부터 젊은 여성을 겨냥한 잡지들이 외국잡지를 흉내내 ‘이달의 별자리운세’를 싣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별자리 운세가 실리지 않는 여성지를 찾기 힘들 정도.

별자리별로 향기와 병 모양이 다른 향수, 열쇠고리, 연필 등 별자리 상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음반제작사인 EMI에선 특정 별자리의 고객을 겨냥, 같은 별자리의 음악가들이 작곡한 곡만 모은 음반도 내놨다.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서양점’에 현혹당한 것 아니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LG그룹 박정숙씨(22). “그냥 재미죠. 농사짓는 데 날씨가 어떨지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날씨에만 맡기고 가꾸는 일을 게을리할 농부가 있을까요?”

▼ 별자리운세란

▼ 점성술은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구획정리해 정해놓은 80개의 별자리 중 태양이 지나는 길과 겹치는 12개의 별자리를 기본으로 한다.

인스턴트 점성술인 별자리운세는 태어난 날을 전후한 한달 동안 태양의 위치를 근거로 인간의 유형을 12가지로 분류한 것.

점성술은 문예부흥기에 학계에서 추방됐으나 최근 세기말신비주의의 한 분야로 힘을 얻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전미국대통령이 주요 정책결정시 부인 낸시가 점성가와 상의해왔다고 백악관비서실장이 폭로한 적도 있다.

사주와 별자리점을 함께 공부한 신세대역학연구소 송소장은 “성격 성향 이성관계는 별자리가, 금전 진로 인간관계는 사주가 더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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