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우울감은 삶의 ‘고속도로 휴게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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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고통 없는 삶이 있을까요? 살아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고통은 삶의 동반자입니다. 고통(苦痛)은 문자 그대로 쓰고 아픕니다. 당연히 우리는 고통 없는 삶을 원하고 고통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하거나 없애려고 합니다. 준비성 있는 사람은 고통을 예방하기 위해 머리를 씁니다. 그럼에도 삶의 일부가 고통이라는 대명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주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안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떤 일이 갑자기 닥칠 것 같다고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고약한 것은 어떤 일인지 불안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막연하게 다가옵니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서만이 아니고 상상만으로도 닥쳐옵니다. 불안의 출발점이나 불안해야 할 이유를 알아야 대비를 할 텐데 알 수 없으니 시간이 갈수록 더 확장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으면 몸도 반응을 해서 맥박이 빨라지고 얼굴이 달아오르고 근육이 긴장을 해서 남에게도 숨길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다 불안이 더 심한 불안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립니다. 불안을 피할 수 있을까요?

우울도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불안과 달리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마음의 반응입니다. 후회와 자기비난이 따라오면서 심하면 잠을 설치고 식욕이 떨어지고 의욕도 저하되어 마음은 물론이고 몸도 고통을 받습니다. 우울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삶의 고통, 불안한 마음, 우울한 기분, 모두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대면(對面)하십시오. 대면은 대결(對決)이 아니고 받아들이고 대화하는 겁니다. 그들이 주는 신호를 듣고 접수하세요. 신호라고 하면 고통, 불안, 우울감이 내게 전달하려는 메시지, 의미를 말합니다.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 배우고 얻고 성장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그 시점에서 내가 겪는 어려움의 고통이 숨기고 있는 삶의 의미를 캐내고 음미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삶이 달콤해야만 한다는 착각은 정말 착각입니다.

마음은 증상을 만들어 내는 달인입니다. 몸에 이상이 없어도 마음은 아주 다양한 신체증상을 만들어 냅니다. 마음 안에 자리 잡은 갈등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으면 불안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우리는 불안을 방어기제를 써서 피하거나 억압하려 하지만 실패하면 이런저런 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 우리를 괴롭힙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박사도 처음에는 불안이라고 하는 감정은 없애야 할 방해꾼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불안이 지니고 있는 기능을 발견하고 ‘신호 불안’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즉, 불안은 마음이 보내는 신호이며 갈등의 뿌리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통로라는 말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신호 불안의 중요성은 정신분석학 밖에서도 인지심리학, 정신생리학, 신경과학 등에서 밝혀진 소견들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불안을 느끼면 우리는 불안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덮어놓고 약물로만 불안을 덜어내려 애를 씁니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를 잃거나 버리는 겁니다. 물론 아주 심한 경우에는 일단 약물로 증상을 줄여야 마음을 들여다볼 준비가 됩니다.

혹시 가끔 우울해지시나요? 우울감이나 가벼운 우울증도 장애물이나 불행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일종의 ‘쉼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고속도로 휴게소’로 보았으면 합니다. 물론 아주 심한 우울증은 뇌 속의 생화학적 균형이 무너진 상태로 보고 약물치료가 우선이지만 일상에서 가끔 느끼는 우울감이나 가벼운 우울증은 마음이 보내는,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신호이니 그 뜻을 존중해야 합니다. 삶의 길을 빠른 속도로 쉬지 않고 달려와 많은 것을 성취한 입장에서는 갑자기 닥쳐온 우울감이 반갑지 않은 손님일 수 있습니다. 매우 당황스럽게 느끼시겠지만 충격 받고 좌절에 빠지기 전에 그 상황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됩니다. 물론 우울해서 집중력이 떨어져 있다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우울감에서 벗어나려고 너무 애쓰지 않고 잠시 우울과 사귀어 본다는 기분으로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우울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스스로 느끼는 우울한 기분 외에도 외출을 거의 안 하거나, 잠을 설치거나 오히려 너무 많이 자거나, 사람은 안 만나고 이메일 검색, 인터넷 뒤지기, 온라인 게임, 혼자 영화 보기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행동을 한다면 스스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우울증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고통, 불안, 우울 모두 피해 가려고 너무 애쓰지 맙시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잘 듣고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합시다! 마음은 양말과 같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뒤집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냐고요? 양말 속에 무엇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 뒤집어 보고 꺼내듯이 마음도 불편하면 뒤집어보고 정리하는 버릇을 키워보세요. 뒤집어서 꺼내지 않고 그냥 다니면 양말 속 발바닥이나 마음이나 제 구실을 못 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고통#불안#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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