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41〉수달 어미의 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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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겠지만 듣고 또 들어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어떤 이야기보다 우리의 가슴을 더 뭉클하게 하는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자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삼국유사’의 신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서라벌에 어떤 남자가 살았다. 어느 날, 그는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 살은 발라서 먹고 뼈는 뒷동산에 버렸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그 다음 날이다. 뼈를 버린 곳에 가 보니 뼈가 보이질 않았다. 핏자국을 따라가니 굴이 나왔다. 수달의 굴이었다. 수달의 뼈가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안고 있는 게 아닌가. 수달은 뼈가 되어서도 새끼들을 보호하려고 돌아간 것이었다. 이제 새끼들은 어미 없는 삶을 어떻게 살까. 새끼들에게서 어미를 박탈한 그 남자는 이 사건으로 깊이 깨달은 바가 있어 출가하여 혜통(惠通)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삼국유사’는 혜통이 이후에 당나라에 가서 무외삼장(無畏三藏)의 제자가 된 후 심법(心法)의 비결을 배워 현실에 활용하는 황당한 이야기를 다소 장황하게 언급하지만, 수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뇌리에는 혜통이 용을 물리치거나 도술을 부리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보다 수달의 이야기가 훨씬 더 오래 남는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었으면 싶다. 잡아먹히어 뼈만 남았으면서도 새끼들이 기다리는 굴을 향해 힘들게 기어갔을 수달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었으면 싶다. 뼈만 남은 수달이 어떻게 굴까지 이동했을까. 과학과 이성과 논리에 위배되어도 보통 위배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과학과 이성과 논리, 때로는 죽음까지 초월하는 것이 사랑이다. 뼈만 남아도 계속되는 어미의 무조건적인 사랑, ‘삼국유사’는 그 사랑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공유물이라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수달의 이야기에서 사랑을 읽고 겸손을 배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삼국유사#신화#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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