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 전문기자의 스포츠&]개미잡이 딱따구리가 싫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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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가 무서운 것은 특별한 원인이 없어 뾰족한 처방도 없다는 것이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징크스가 무서운 것은 특별한 원인이 없어 뾰족한 처방도 없다는 것이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요즘 스포츠 기사에 징크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KCC는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SK에 내주며 이번 시즌에도 ‘잠실 징크스’ 탈출에 실패했다. KCC는 2014년 12월 9일 이후 잠실 경기에서 홈팀 SK에 4시즌에 걸쳐 12연패를 당하고 있다. 결국 KCC는 잠실 2연패에 발목이 잡혀 1승 3패로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런데 손흥민의 소속 팀인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 비하면 KCC의 지난 4년은 ‘흑역사’ 축에도 못 낀다. 토트넘은 2일 영국 런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경기에서 3-1로 이겨 ‘첼시 원정 무승 징크스(10무 19패)’를 무려 28년 만에 깼다. 손흥민은 이날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74분 동안 뛰며 팀 승리를 도왔다.

징크스(jinx)는 딱따구릿과에 속하는 개미잡이 새(라이넥·Wryneck)의 학명(學名)인 징크스 토르퀼라((jynx torquilla)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라이넥은 ‘목이 굽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일까. 징크스는 ‘불길한 대상이 되는 현상, 운명적인 일’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스포츠 선수들의 징크스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게 ‘2년차 징크스’다. 데뷔 첫해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이듬해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를 말한다. 부상 등 특별한 이유도 없다. 다만 장단점이 노출돼 집중견제를 받고 더 잘해 보려는 부담감 때문이라는 추측은 해볼 수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2015년 신인왕 김세영, 2016년 신인왕 전인지도 2년차 징크스를 앓았다. 특히 전인지는 2017시즌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으며 준우승만 5차례 기록했다.

2017년 LPGA투어 3관왕(신인왕, 상금왕, 올해의 선수) 박성현은 지난주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시즌 첫 톱10(공동 9위)으로 부진 탈출의 조짐을 보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올 시즌 3개 대회 연속 20위 밖으로 밀려나더니, 급기야 2주 전 기아클래식에서는 LPGA 데뷔 후 첫 컷 탈락하며 뚜렷한 2년차 징크스 징후를 보였다.

골프계에서 가장 유명한 징크스는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의 저주’다. 1934년 창설대회가 열린 마스터스는 1960년부터 개막 전날 이벤트성 대회인 파3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파3 콘테스트 우승자가 정작 그해 본 대회에서 우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타이거 우즈가 3년 만에 출전해 관심을 모았던 올해도 마찬가지다. 파3 콘테스트에서는 톰 왓슨(69)이 역대 최고령 우승자가 됐고 ‘그린재킷’은 패트릭 리드(이상 미국)가 차지했다.

징크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뚜렷한 인과관계도 없다. 하지만 미신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다. 선수나 팀이 징크스를 의식하면 실제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점프 천재’로 불리는 피겨 스타 네이선 천(미국)은 ‘빙판에 들어설 때 오른발부터 얼음을 밟아야 경기가 잘 풀린다’는 희한한 징크스를 갖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대비해 ‘대한민국 선수단 취재정보자료집’을 발간했다. 7개의 공통 질문 중 세 번째인 ‘징크스가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한 선수 저마다의 답변이 눈길을 끌었다.

대회 폐막 한 달여가 지나 새삼 궁금해졌다.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안긴 선수들의 징크스는 뭘까. 윤성빈(스켈레톤), 이승훈(스피드스케이팅) 임효준, 최민정(이상 쇼트트랙), 쇼트트랙 여자 계주 대표팀의 답변은 똑같았다. ‘특별한 징크스 없음.’ 절대강자에게는 징크스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는가 보다.

우리는 징크스 비슷한 것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시나브로 만들어진 원치 않는 징크스가 있을 것이다. 자주 가는 골프장인데 유독 특정 홀에서 죽을 쑤는 게 그렇다. 결국 징크스는 스스로가 만든 것. 깨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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