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구자룡]‘하나의 중국’에 도전하는 미국의 쌍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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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총통(왼쪽)이 지난해 1월 엘살바도르에 도착해 공항에서 우고 마르티네스 외교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환영식에 참석했다. 사진 출처 구글닷컴
차이잉원 대만 총통(왼쪽)이 지난해 1월 엘살바도르에 도착해 공항에서 우고 마르티네스 외교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환영식에 참석했다. 사진 출처 구글닷컴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미국은 중국과 1979년 1월 1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공동방위조약을 폐기하는 대신 그해 4월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필요에 따라서는 대만에 병력을 투입할 수 있는 근거 등도 포함돼 있다.

미국이 이런 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수교 협상에서도 큰 쟁점이 됐다.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대만에 무기를 계속 팔겠다는 것은 대만과 대화를 통해 국가 통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무력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반발했지만 양국의 수교와 미국의 ‘대만관계법’ 제정은 이뤄졌다.

미국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명예교수는 “덩샤오핑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지할 수 있게 할 만큼 (중국이) 충분한 역량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를 허용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판단했다”(‘덩샤오핑 평전’)고 분석했다.

미국이 대만 안보 지원을 위해 무기는 판매하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는 뜻에서 지켜온 것이 고위층 교류의 자제였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서명한 ‘대만여행법’은 대만 총통의 워싱턴 방문 및 교류도 가능하게 한다. 실행 여부와는 별개로 미중 관계에서 또 하나의 ‘레드 라인(최저선)’을 넘어설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어떠한 분열 행위도 인민의 규탄과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1월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하자 “법이 발효되면 단교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을 얼마나 민감하게 여기는지는 1995년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모교 방문 반발 파동’에서 극명히 알 수 있다.

‘두 개의 중국’을 내세우며 대만 독립을 주장한 리 총통이 모교인 코넬대 강연 등을 위해 1995년 6월 7일부터 12일까지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은 ‘개인 신분’으로 비자를 발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국은 7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인민해방군 제2포병 부대가 푸젠(福建)성에서 미사일 6발을 대만 쪽 바다로 발사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8월 15일부터 25일까지는 동중국해에서 해상과 공군 합동 훈련도 벌였다. 미국이 이듬해 3월 인디펜던스호와 니미츠호 항모를 대만 인근으로 파견하면서 일단락됐다. 미국은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 최대 규모의 미군 병력을 서태평양에서 전개했다.

중국은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은 물론이고 수교국이 많은 카리브해 지역과 중남미를 방문할 때 중간 급유 등을 위해 거쳐 가는 것도 가만두지 않았다. 하와이나 서부 캘리포니아주, 알래스카주 등을 거치도록 했다.

리 총통은 1994년 5월 중남미를 순방할 때는 하와이를 경유하되 비행기에서는 내리지도 못했다. 역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출신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2004년 8월 중남미 방문을 위해 하와이를 잠시 경유했을 때는 비행기에선 내렸지만 그를 환영하는 대만 교민에게 접근하지 못했고 승용차 창문도 못 열었다.

친중파였던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도 ‘미국 경유’에서 수난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2008년 8월 첫 중남미 방문 당시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을 거쳤지만 교민들과 일절 접촉하지 않아 ‘투명인간 방미’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 6월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호텔 방에서 나오지 않고 미국 내 인사나 교민들에게 전화만 돌려 ‘전화 외교’를 하러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2016년 5월 취임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은 2017년 1월 중남미 4개국을 순방할 때 뉴욕에 들러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만날지가 관심이었다. 트럼프가 당선 직후 미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하는 등 과거 대통령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은커녕 미 동부 지역도 못 가고 휴스턴과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했다.

중국은 이제 30년 전 수교 당시의 중국이 아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해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다. 미국이 시 주석의 경고가 나온 20일 알렉스 웡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를 대만에 보내 잽을 날렸지만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5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중 수입품 관세 폭탄에 서명했지만 ‘하나의 중국’에 정면 도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만관계법’에 이어 ‘대만여행법’이 가세된 미중 간 ‘하나의 중국’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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