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엉겅퀴 같은 삶 등진… 굿바이, 오리어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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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0일 화요일 흐림. 장미 정원.
#278 The Cranberries ‘When You're Gone’ (1996년)


“다음 주쯤 밥 한번 먹자.” “그래, 조만간 한번 보자.” 올 한 해 동안 또 얼마나 자주 이런 공수표를 날릴지 모르겠다. 광막한 공간을 오가는 천체들처럼 우리는 만났다가 헤어진다. 어떤 만남은 그렇다. 그 별이 소멸하는 순간, 비로소 그가 내뿜는 찬란한 광휘를 멀찌감치 볼 뿐이다.

몇 년 전 친구 D의 죽음만 해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본 게 20년 전쯤이었나. 그러고 D는 우주처럼 깜깜한 내 기억의 밤을 소행성처럼 헤매다 마지막 순간 맹렬하게 타올라 빛의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지난달 사망한 아일랜드 록 밴드 ‘크랜베리스’의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을 기억한다. 1994년 2집 ‘No Need to Argue’(사진) 음반을 샀던 건 단박에 뇌리를 가격한 강렬한 얼터너티브 록 곡 ‘Zombie’ 때문이었다. 하지만 ‘Ode to My Family’를 비롯한 음반의 다른 수록곡들은 여리고 감상적이기만 한 것 같아 처음엔 좀 실망했다. 반복해 들을수록 음반은 날 바다 건너 멀리로 데려갔다.

아일랜드 가수 에냐가 청명한 밤하늘 위를 난다면, 오리어던의 이국적인 목소리는 명멸하는 록 사운드가 펼쳐낸 들판, 그러니까 호밀이며 귀리가 자라는 평야를 거니는 듯했다. 전쟁과 아동 살해에 대한 혐오, 사랑의 환희와 환멸을 오가는 가사를 읊는 오리어던이 성녀처럼 느껴졌다. 앨범 후반부에 9분 넘게 자리한 접속곡 ‘Yeats‘ Grave’와 ‘Daffodil Lament’(QR코드)는 나를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의 무덤과 수선화 꽃밭으로 이끌었다.

오리어던의 장례식은 지난달 23일, 고인의 고향인 아일랜드 리머릭주 성당에서 치러졌다. 입장 곡으로는 고인이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부른 ‘Ave Maria’가, 퇴장 곡으로는 크랜베리스의 ‘When You’re Gone’이 흘렀다고 한다. 크랜베리스의 마지막 정규앨범 ‘Roses’(2012년)의 마지막 곡 ‘Roses’에서 오리어던은 노래했다. ‘삶이란 장미 정원이 아니죠/차라리 엉겅퀴예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크랜베리스#돌로레스 오리어던#아일랜드 가수 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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