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비행기]“벗이여 어디로 가는가” 보내는 자들의 서글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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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쉽게 가 버리는 것이 슬프네/공주로 이사 가는 이정재를 보내며(送李定載往公州序).”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1750∼1805)는 한양을 떠나 충청도 공주로 이사 가는 친구 이정재에게 주는 시(詩) 한수를 전했다. 한양에서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낙향하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먹먹한 마음이 담겼다.

우리 선조에겐 떠나는 이에게 글을 지어 보내는 ‘송서(送序) 문화’의 전통이 있었다. 중국에선 수당 시대부터 유행하다 고려 중엽에 한반도로 퍼졌다. 활짝 꽃을 피운 건 조선시대였다. 당대 문인들의 송서 48권만 따로 묶은 ‘송서, 길 떠나는 그대에게’(한국고전번역원)라는 책이 지난해 출간되기도 했다.

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된 심치선 연세대 명예교수의 추모예배에서 70년간 우정의 작별시를 낭독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90)도 그에 못지않다. 그는 고인을 위해 영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속세를 떠나(Crossing the Bar)’를 영전에 바쳤다.

“내 배에 돛을 달고 길 떠날 적엔 이별의 슬픔일랑 없기 바라네.”

값진 우정을 나누는 이들의 여정은 결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떠나는 이를 위한 마무리가 아름다운 그들의 인연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박제가#송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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