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11월 27일]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홍수환, 4전5기의 신화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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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1월 26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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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 선수가 카라스키야와의 경기 2라운드에서 4차례나 다운당하는 모습. 그는 역전 KO승을 거두며 4전5기의 신화를 만들었다. 동아일보 지면 캡처
홍수환 선수가 카라스키야와의 경기 2라운드에서 4차례나 다운당하는 모습. 그는 역전 KO승을 거두며 4전5기의 신화를 만들었다. 동아일보 지면 캡처
동아일보 1977년 11월 28일자 8면에는 4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모두 권투장갑을 낀 링 안의 사내가 쓰러진 장면이다. 설명은 이렇다. ‘①레프트를 턱에 맞고 주저앉는 홍수환 ②두 번째 주저앉는 홍수환. 힘이 빠진 듯했다 ③게임이 끝난 것으로 착각할 뻔했던 세 번째의 다운 ④맞았다기보다는 밀려 쓰러진 듯한 홍수환의 네 번째 다운.’

상대의 별명은 ‘지옥에서 온 악마’. 1977년 11월27일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주니어페더급 타이틀매치에 홍수환이 상대할 엑토르 카라스키야… 11전 11KO승의 무시무시한 주먹을 가진 카라스키야에게 홍수환은 적수가 안되는 듯 했다. 2라운드에만 4차례나 다운됐다. 2라운드가 끝날 무렵 파나마 관중들은 승리를 자축하듯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운명의 3라운드. 홍수환은 ‘한 방은 날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섰다. 원투 스트레이트, 휘청거리는 상대를 향해 라이트 어퍼컷, 그리고 보디 블로. 쓰러진 카라스키야는 하늘을 보고 누운 채 일어나지 못했다. 3회 48초만의 통쾌한 역전KO승이었다. “세계 프로복싱 사상 한 라운드에서 네 번이나 다운되고 다음 라운드에서 역전 KO승을 거둔 건 이번이 처음이다.”(동아일보 1977년 11월 28일자 1면)

홍수환 선수의 ‘4전 5기 신화’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1977년 11월 28일자 1면.
홍수환 선수의 ‘4전 5기 신화’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1977년 11월 28일자 1면.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이 경기의 규정은 그때까지의 세계복싱협회(WBA)의 일반적인 준칙을 따르지 않았다. WBA의 경기 준칙은 ‘한 회에 한 선수가 3번 다운되면 무조건 KO패’였다. 그런데 카라스키야가 ‘무제한 다운 인정’을 강력히 요구했다(동아일보 1977년 11월 28일자 8면). 네 번이나 다운되고도 경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홍수환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를 다시 외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는 앞선 3년 전인 1974년 첫 세계챔피언에 오른 뒤 어머니와 전화 통화에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쳤다. 어머니는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라고 답해 감동을 전했었다. 그러나 이듬해 방어전에서 패한 그가 체급을 올린 뒤 맞선 상대가 카라스키야였다.

이날 경기는 두고두고 ‘4전5기의 신화’로 회자됐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지만 2회에 네 번이나 다운되는 것을 보고는 한결같이 지는 승부로 알았다. 그러나 홍 선수는 굴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4전5기하여 분전했다.”(동아일보 1977년 11월 28일자 1면)

지난해 방한한 카라스키야와 홍수환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카라스키야는 ‘4전5기 신화’ 40주년을 맞은 올해도 방한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방한한 카라스키야와 홍수환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카라스키야는 ‘4전5기 신화’ 40주년을 맞은 올해도 방한했다. 동아일보DB

‘4전5기 신화’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기념행사에는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홍수환과 파나마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카라스키야가 만났다. 카라스키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홍수환을 찾았다. 인생의 역경에 굴하지 않고 맞서온 두 사람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던 젊은 날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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