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태워야 향기롭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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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향나무

유교,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우리나라의 향나무.
유교,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우리나라의 향나무.
측백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인 향나무는 태우면 향내가 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측백나무의 잎은 납작한 데 비해 7, 8년 정도 자란 향나무 잎의 끝은 둥글다. 그래서 향나무를 원백(圓柏)이라 부른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가 붙인 학명에는 향나무의 원산지를 중국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울릉도에도 향나무가 자생한다.

중국에서는 ‘시경(詩經)·국풍(國風)’에 나타나듯 향나무를 회(檜)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회를 전나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편백나무라 부른다. 나는 같은 나무를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달리 부르는 현상을 ‘문화변용’이라 부른다.

향나무는 나무 중에서도 좋은 향기를 내는 대표적인 나무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에서는 향나무를 즐겨 심는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향나무를 즐겨 심은 또 다른 이유는 공자가 직접 향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중국 산둥성 취푸의 공부(孔府)에는 공자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를 기념하는 ‘선사수식회(先師手植檜)’ 푯말이 있다.

우리나라의 서원과 향교 및 정자 등 성리학자의 공간에서 쉽게 향나무를 만날 수 있는 것도 공자의 영향이다. 회재 이언적(1491∼1553)과 관련이 있는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세계문화유산)의 향단(香壇)과 경주시 안강읍 독락당과 옥산서원의 향나무는 공자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한 사례다. 서울 동대문구 선농단의 향나무를 비롯해 우리나라 전역에 향나무 천연기념물이 적지 않은 것도 중국에서 수입한 유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

향나무는 불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찰을 향계(香界), 극락세계를 향국(香國), 불사에 올리는 돈을 향전(香錢), 부처 앞에서 향을 피우고 서약하는 것을 향화정(香火情)이라 불렀다. 노계 이인로(1152∼1220)의 ‘설용동파운(雪用東坡韻)’과 난설헌 허초희(1563∼1589)의 ‘청루곡(靑樓曲)’에 등장하듯이 귀한 사람들은 일곱 가지 향나무로 만든 수레, 즉 칠향거(七香車)를 타고 다녔다.

향나무처럼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향기를 내는 존재는 아주 드물다. 사람이 속을 태우면 향기가 나기는커녕 얼굴이 누렇게 변한다. 향나무가 죽어서도 향기를 뿜어내는 것은 그만큼 삶이 지독하기 때문이다. 한 존재가 지독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 없다. 사람도 생전에 자신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불살라버려야만 죽으면서 세상에 향기를 남기고 갈 수 있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측백나뭇과#향나무#측백나무#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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