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황금연휴, 또 다른 불평등의 기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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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간 추석연휴 개봉박두
관공서 대기업은 장기휴무… 중소기업 등에는 ‘그림의 떡’
최저임금만큼 중요한 휴식… 공평한 혜택위한 정책不在
휴식권의 소외층 배려하는 공생과 연대의 길 찾아야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드라마 작가의 꿈을 위해 대기업을 그만둔 29세 여성. 월급이 80만 원으로 격감한 보조 작가로 전업한다. 공모전에 연이어 떨어지며 좌절하다 1년 만에 겨우 하루 휴가를 내어 지방여행을 다녀온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해 해고 통보를 받는다. 메인 작가 갑은 심기를 건드린 보조 작가 을을 쫓아내기로 작정하고 그 빌미로 휴가를 들먹인다.

요즘 시작한 TV 드라마의 에피소드다. 휴일이나 휴식 시간이 비정규직에게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가 여기서도 엿보인다. 시쳇말로 ‘역대급’이라 일컫는 최장기 연휴의 막이 곧 오른다. 북한의 ‘역대급 수소폭탄’ 운운 협박과 뒤섞여, 국민적 합의에 따른 열흘간 추석연휴 개봉박두 소식이 뉴스를 장식한다. 임시공휴일 대체공휴일 등 온갖 명목을 총동원해 조성되는 이 거국적 특별휴가를 도대체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인 이들도 있다. 외려 그건 배부른 고민일 뿐, 황금연휴를 누릴 수 없는 사람도 많다.

공휴일은 공공기관이 작동하지 않는 날을 뜻한다. 그래서 공무원은 당연히 공휴일에 쉰다. 민간 기업은 공휴일을 지킬 것이 권고될 뿐 법적 강제력은 없다. 회사가 유급휴일로 정하지 않는다면 평일과 마찬가지가 된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의 경우 단체협약 등을 통해 유급휴일의 혜택을 누린다.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장이라면? 법정공휴일도 연차로 대체하는 사례가 많은데 ‘임시공휴일=쉬는 날’ 공식은 딴 세상 얘기다. 휴가에도 ‘계급 차별’이 뚜렷하다. 그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1231명을 대상으로 물으니 2일, 6일에 모두 쉬는 직장인은 53%란다. 반면 ‘이틀 다 일한다’는 25%. 기업 형태로 살펴보면 대기업 직장인은 73%가 ‘2일, 6일 다 쉰다’고 답했으나 중소기업은 48%에 불과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임시공휴일의 휴무계획을 350개사에 물은 결과 2곳 중 1곳꼴로 “쉴 수 없다”고 했다. 악덕 업주라서가 아니라 생존 탓이란다. 역대급 연휴를 만약 다 쓴다면 이들로서는 생산량과 매출에 그야말로 역대급 타격이 나는 셈이다. 실제로 2015년 광복절 전날(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을 때도 중소기업 근로자 61%가 묵묵히 정상 근무를 했다. 여기에 못 끼는 곳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말 많은 세상이라도 그들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아니, 떠들 틈조차 없다. 국민은 대체 누구인가. 국가적 차원으로 시행되는 공휴일이지만 휴식권에서 소외된 그 많은 이들에게는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정책도 그 햇살이 넓고 고르게 퍼지지 못한다면 위화감만 커진다. 예컨대 양성평등과 관련된 선진 제도와 정책도 대부분 공무원, 대기업 위주로 혜택이 돌아가고 그 울타리 밖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역대 정부에서 추진한 육아휴직과 보육서비스를 봐도 알 수 있다. 직원 몇 명 안 되는 노동집약적 업체의 대표 격인 출판사에서 한 명만 육아휴직을 가도 ‘대략난감’ 상황인데 어떻게 인력 공백을 감당하라는 건가. 정부는 선심 쓰는 정책을 발표했으니 답은 각기 알아서 찾으라는 식이다. 직장어린이집도 그렇다. 근로자 500명 이상, 여성 300명 이상 사업장은 의무 설치의 대상이다. 궁극적으로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월등한 보육 혜택을 누리고 그 나머지 사람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빈익빈 부익부, 바로 그 본보기 아닌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공무원이건 아니건 정책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려면 시행 이전에 그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치밀한 고민과 검토, 꼼꼼한 보완 설계가 필요하다. 고용보장에 연금과 더불어 언제나 새 제도의 ‘선물’을 1순위로 수령하는 이 나라 공무원이라면 국민의 박탈감에 대해 답할 책임이 있다. 연휴의 그늘에서 상대적 빈곤과 좌절을 되새기는 침묵의 다수를 어떤 방식으로든 배려하는 처방전을 내놨어야 했다.

휴식은 물론 풍요한 삶의 바탕이 된다. 그런 만큼 공평한 휴식의 보장은 최저임금 인상만큼 중요하다. 황금연휴의 핵심 고리인 10월 2일 임시공휴일 지정은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충분한 국민 휴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였으나 정작 그 혜택이 가장 아쉽고 절실한 이들은 씁쓸한 연장근무를 감수해야 할 터다. 수렵시대 사람들은 다 같이 사냥하고 채집활동을 했으며 쉴 때는 모두 함께 쉬었다. 그때보다 인류의 삶이 진보했다는 21세기, 휴식에 있어서도 공생과 연대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황금연휴가 사회 갈등을 자극하는 또 다른 불평등의 기원이 되지 않으려면.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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