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낮의 삶에서 받은 설움…밤의 포장마차서 달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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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를 벌기 위해 오늘도 수없이 많은 밥맛 앞에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온 내게 밥이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밥이 아니다.―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여림·최측의 농간·2016년)》
 

직장인에게 일하는 시간은 역설적으로 밥을 먹기 위한 기다림이라 말할 수 있다. 직장상사나 거래처, 고객으로부터 ‘밥값도 못하는’ ‘밥통 같은’이란 나무람을 받아도 밥때를 떠올리며 묵묵히 군소리를 삼키기도 한다. 일의 숭고함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조차 밥을 먹지 않고는 일할 수 없다.

그래서 식당에서 예상하지 못한 불편함을 겪는다면 불쾌함을 넘어 짜증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주문한 음식을 마치 ‘컬링’ 하듯 테이블 끝에서부터 밀어 던져 서빙하거나, 누가 무엇을 주문했는지 묻지도 않고 음식을 대충 테이블 위에 몽땅 두고 간다면 황당하고 불쾌하다.

최악은 식당의 눈치 주기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음 손님을 위해 일어나 나가 달라는 유무언의 압박이 쏟아지는 일이다.

숟가락을 놓고 물로 입가심을 하려는 순간 어깨너머로 불쑥 파고드는 팔, 그 팔을 휘휘 저어 그릇들을 가져가고 행주로 상을 박박 닦는 모습에서 손님으로서 나의 효용가치는 끝났으니 나가 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생각에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면 과민반응일까.

저자 여림은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을 통해 낮의 삶에서 받은 설움을 저녁 포장마차 식사로 해소했다고 한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도시 공공근로를 하던 날, 일감이 없어 공원에서 멍하니 앉아만 있다 오던 날에도 그는 저녁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를 먹으며 위안을 얻었다.

그 비결은 맛있고 따뜻한 국수국물이나 넉넉한 김치 인심에만 있지 않았다. 저자가 가락국수 한 그릇으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도록 포장마차 주인은 어떤 재촉도 방해도 하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만큼 주어지는 삶의 여유, 그것이었다. 밥때만 기다리며 일상의 고단함을 견디는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에게도 각자의 포장마차가 있었으면 한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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