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이세형]ODA의 또다른 가치 일깨워준 르완다 대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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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세형 국제부 기자
“가끔 우리가 서로에게 한 행동(내전 중 벌어진 살인, 성폭행, 약탈 등)을 신이 과연 용서해 주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다시 주변을 돌아보고 깨닫죠. 신은 이미 이곳(아프리카)을 아주 오래전에 떠났다는 것을….”

2007년 개봉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명대사다. 짐바브웨 출신으로 다이아몬드와 무기 밀수꾼인 주인공 대니 아처 역을 맡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아프리카계 백인 억양의 영어로 검은 대륙의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실제로 전쟁, 가난, 질병, 독재, 부정부패 등은 정도 차이가 있지만 많은 아프리카 국가가 경험해 온 현실이다. 특히 올해는 아프리카의 부패한 독재자들이 집중적으로 조명받았다. 1월 감비아에서는 23년간 집권하며 5000만 달러 이상의 국고를 횡령한 야히아 자메 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한 채 독재를 연장하려다 성난 민심에 쫓겨 적도기니로 망명했다. 이를 계기로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31년 집권)과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37년 집권)의 부정부패와 독재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다.

그럼 점에서 4일(현지 시간) 9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3번째 연임에 성공한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남다르다. 17년간 집권한 카가메는 1994년 내전으로 80만 명이 사망한 르완다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르완다를 ‘아프리카의 한국’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로 만들겠다고 외치며 경제성장에 올인한 결과다. 최근 연평균 7%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인 르완다는 국민소득, 국내총생산(GDP), 사회 투명성 등에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런 르완다에 1990년대부터 올해까지 약 1억 달러를 지원했을 만큼 관심이 많다. 특히 농업과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부문에 지원을 많이 해왔고, 아프리카 7개 중점협력국에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카가메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비정부기구(NGO), 국제기구, 언론 등에서 카가메가 독재자라는 비난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민주주의, 협치, 언론 자유 등을 인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독재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카가메는 헌법을 개정해 2034년까지 집권할 여건을 마련했다. 정부 비판과 반대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카가메의 독재가 정치·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결국 르완다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국 따라하기에 적극적이고, 우리 정부도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개발도상국 중에는 르완다처럼 독재자가 이끈 나라가 적지 않다. 아프리카에선 우간다, 아시아에선 캄보디아(훈 센 총리)와 우즈베키스탄(지난해 사망한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는 경제성장과 원조 효율성이란 측면에 집중해 이 나라들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문제의식을 안 가졌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답게,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10년(2019년)을 앞둔 나라답게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도 좀 더 다양한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ODA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효율성 못지않게 민주주의, 인권, 언론 자유 같은 정치·사회적 가치도 중요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성과가 좋아도 민주화에 문제 있는 나라는 지원 안 한다’ 식의 단순한 접근을 하자는 건 아니다. 그 대신 민주주의와 사회 투명성 등을 키울 수 있는 제도의 도입과 확대를 강조할 수 있다. 가령 ODA 지원 대상국을 선정하거나 평가할 때 △전자정부 시스템 △정부 정보공개 제도 △예산 집행 타당성 조사·평가 △체계적이고 공정한 공무원 선발·육성 같은 제도의 시행 여부 등을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다. 최창용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국제개발)는 “장기적으로 우리 지원을 받는 나라를 더욱 민주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한국 ODA의 위상도 높이는 시도”라고 말했다.

한국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개도국 엘리트 공무원들에게 “결국 경제성장도 민주화와 사회통합과 함께 지향해야 한다”는 ‘우리 경험’을 강조하는 교육 시스템도 만들어 볼만하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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