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인의 잡학사전] 英 왕족은 어떤 성(姓) 따를까 여왕? 남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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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91)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 공(96)이 2일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필립 공은 이날 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영국 왕실 해병대 퍼레이드에 참석하는 걸 마지막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하기로 한거죠. 이 퍼레이드를 마지막으로 정한 건 그가 왕실 해병대 총사령관이기 때문입니다.

남자 왕의 아내를 뜻하는 왕비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여왕의 남편을 뜻하는 낱말 ‘국서(國¤)’는 참 낯설기만 합니다. 여왕의 남편으로 사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필립 공은 곧잘 “영국에서 자식에게 가문을 물려주지 못하는 남자는 나뿐”이라고 자조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가문은 성씨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도대체 영국 왕실은 어떤 성(姓)을 쓸까요?
1917년까지 영국 왕족은 따로 성이 없었습니다. 가문이나 왕조 이름이 있으니 성을 쓰지 않아도 그 사람이 누군지 다 아니까요. 현재 영국 왕족인 ‘윈저’ 가문은 원래 독일에 뿌리를 둔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20세기 초반에 독일하고 제1차 대전을 치렀습니다. 가문 이름이 독일색이라 부담이 됐던 게 당연한 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 조지 5세는 버크셔 주 윈저에 있는 성채(城砦) 이름을 따 가문 이름을 윈저로 바꿨습니다.

사진 출처: 영국 왕실 홈페이지
사진 출처: 영국 왕실 홈페이지


그러면서 “빅토리아 여왕(1819~1901) 후손들 성을 윈저로 한다. 단, 기혼이거나 결혼한 적이 있던 여성은 예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기 전까지 영국 왕족들 성은 윈저였습니다.
필립 공 역시 그리스 왕족 출신이라 성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가문 명 역시 독일 느낌이 나는 ‘바덴버그’였습니다. 조지 5세가 뜻을 살려 영어로 번역한 게 ‘마운트배튼’. 필립 공은 자연스레 ‘필립 마운트배튼’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문제가 생긴 건 195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때였습니다. 필립 공의 외삼촌인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1900~1979)이 여성이 남편 성을 따르는 관례에 따라 영국 왕가 명칭을 윈저에서 마운트배튼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거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어머니인 메리 대왕대비는 이 소식을 듣고 대노해 윈스턴 처칠 총리(1874~1965)에게 ‘영국 왕가 이름은 계속 윈저가 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그러면 마운트배튼은 아예 사라졌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1960년 여왕 부부는 둘 사이에서 나온 자손들에게는 다른 성을 주겠다고 결정을 내립니다. (왕인데 이 정도도 마음대로 못 할까요?) 그 뒤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을 뿌리로 둔 자손들은 ‘마운트배튼윈저’를 성으로 쓰게 됐습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찰스 왕세자는 자연스레 ‘찰스 마운트배트윈저’가 이름인 겁니다.

단, 왕이 되면 성을 바꿀 수 있습니다. 찰스 왕세자가 즉위한 뒤 “내 후손들은 마운트배튼윈저 대신 윈저만 성으로 쓰겠다”고 하면 줄줄이 성이 바뀌는 거죠. 마운트배튼을 써도 되고 다른 성을 써도 됩니다. 왜냐? 왕이니까요.

요컨대 필립 공 아들인 찰스 왕세자도 자식에게 가문을 물려줄 수 있지만 필립 공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필립 공이 저처럼 속 좁은 인간이었다면 ‘외삼촌만 아니었다면…’이라고 종종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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