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임신 기간에 임금을 25% 올려준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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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은 인간의 몸에 대한 대단한 부담이다. 그리고 그 몸이 그 후에도 힘들게 일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많은 노동계급 움들이 아이 갖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황금가지·1996년)

올 초 정부가 ‘가임기 여성지도(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만들어 논란이 됐다. 이 지도는 ‘출산율이 떨어져 문제인데, 임신할 수 있는 여성들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느냐’는, 여성에 대한 몰상식한 힐난을 전제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아기 낳는 기계 취급을 당했다며 경악했다.

출산율 하락은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오는 가상 국가인 ‘이갈리아’에서도 화두다. 이갈리아는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위치를 정반대로 뒤집어 놓았다. 여성을 자궁을 나타내는 ‘움’, 남성을 움에 맨(남성)을 합한 ‘맨움’이라고 이름 짓고 성별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비꼬았다. 움들은 맨움들을 육체적·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맨움들은 ‘무능력하고 약하다’는 편견을 받으면서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이런 이갈리아에서 여성이 출산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갈리아는 여성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임신 기간 임금 25% 인상, 출산 휴가 연장, 출산 보너스 인상, 수유 기간 식비 인상 등을 제시한다. 출산율 하락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출산하는 사람에게 지우지 않고, 그들이 왜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지를 파악하고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7년에 쓰인 책이지만, 출산율에 접근하는 방식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서로 다른 두 성별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쳇바퀴만 돌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여성과 남성의 자리를 바꾼 것은 누군가는 ‘우리가 당했으니 너희도 당해 봐라’라는 식의 통쾌한 미러링(mirroring·되받아치기)의 방편이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양성불평등한 사회를 지켜보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이미 40년 전에 지금의 현실을 보고 쓴 것만 같은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분리는 그들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이 싸워 얻고자 하는 것은 통합과 평등이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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