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보수 살길은 ‘새 얼굴’… 누구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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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1패’ 당한 유승민… “새 얼굴 나와야” 진단 的確
자리 주어 예비주자 키우는 文… 사람 키울 줄 모르는 보수
現 보수 당권주자 부적격… 脫기득권·스토리·품격 갖춘 인물 없는 게 아니라 안 찾아

박제균 논설실장
박제균 논설실장
‘의문의 1패’란 방송 신조어를 아는가. 출연자들이 개그 소재로 그 자리에 없는 연예인 ○○○ 씨의 흉을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자막으로 ‘○○○ 의문의 1패’라고 뜬다. ○○○이 자신도 모르는 새 억울하게 당했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 때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를 보면서 이 말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곤 했다.

유승민이 추구하는 보수의 지향점은 말 그대로 ‘바르다’. 누구보다 안보관이 뚜렷하면서도 개혁 보수, 따뜻한 보수로 지평을 넓히려 했다. 콘텐츠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경제에 해박하다. TV토론도 가장 잘한 축이다. 그럼에도 지지율은 땅에 붙어서 도무지 뜰 줄 몰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걸어놓은 ‘배신자’의 주술이 그만큼 강력했던 걸까. 오죽 안 뜨면 “얼굴이 대통령감이 아니다”는 인신공격성 분석까지 난무했을까.

누구보다 절치부심했을 유승민이 “대선 패배의 책임은 후보가 제일 큰 것”이라며 당권 도전에 선을 그은 것은 역시 그답다. “바른정당이 진짜 새 모습을 보이려면 새 얼굴들이 나와야 한다”고 진단한 것도 맞다.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문재인 대통령은 80%가 넘는 지지율의 힘으로 ‘이명박근혜 보수정권 9년’을 뒤집는 이른바 적폐 청산을 착착 실행해가고 있다. 4대강 사업부터 국정 농단 사건까지, 검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부터 방송까지 망라해 파헤치는 작업을 로드맵대로 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 야당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문 대통령은 행운아다. 김대중 노무현 집권 때는 보수 야당에 이회창과 박근혜가 있었다. 이명박 집권 때는 좌파세력이 광우병 시위로, 박 대통령 때는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집권 초부터 정권을 흔들었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을 흔드는 행위야말로 이제는 사라져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그래도 지금처럼 보수의 미래가 안 보이는 것은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그 정도 참패를 했으면 당연히 보수 야당 내에서 땅을 치는 자성(自省)의 소리가 높아도 시원찮을 터. 그럼에도 일부 초·재선만 말로만 정풍(整風) 운동을 되뇌며 여전히 웰빙이다.

문 대통령의 집권은 이명박 당선 과정과 비슷하다. 당시 ‘노무현’ 소리만 나오면 백약이 무효였듯, 이번에는 ‘박근혜’ 소리에 보수 후보들은 추풍낙엽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교수 출신 류우익을, 문 대통령은 51세 정치인 임종석을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앉혔다. 보수, 도대체 사람 키울 줄을 모른다.

박근혜 정부 비서실장들은 60대 후반이 상대적으로 젊은 축이었으니 말 다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키웠다. 지금도 진보에는 대선 주자였던 안희정 이재명, 문 대통령이 자리를 주어 예비 주자로 키우는 임종석 김부겸 김영춘 등이 포진하고 있다.

반면 보수에 누가 보이는가.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유승민은 이미 흘러간 물이다. 홍 전 후보는 당권에 마음이 있어 보이지만, 유승민처럼 보수를 살릴 얼굴을 키우는 게 순리다. ‘박근혜 보수’에 질린 민심은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인물이 다시 나선다면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일약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같은 새 얼굴이 필요하다.

보수 새 얼굴의 조건을 뭘까. 첫째, ‘보수=기득권’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자천타천으로 자유한국당 당권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점에서 결격이라고 나는 본다. 유권자는 당의 얼굴이 달라져야 당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둘째, 인물에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자기희생의 스토리라면 더 좋다. 보수 야당에는 상대적으로 여권에 비해 스토리 있는 인물이 적다. 집안 좋고 공부 잘해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한 것 말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오렌지족 이미지를 풍기는 재력가 출신 정치인들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 야당이 획기적으로 변하려면 어쩔 수 없다.

셋째, 품격과 책임감, 콘텐츠는 기본이다. 국민은 품격 없는 보수, 대통령과 당이 망가져도 책임지지 않는 보수, 자기 언어로 설득도 못하는 맹탕 보수에 질릴 대로 질렸다. 보수에 이런 걸 갖춘 사람이 있겠냐고? 어디서 이런 물건을 찾았나 싶은 문 대통령의 한 달 인사를 보면 그런 말은 못 할 것이다. 인물이 없는 게 아니라 못 찾는 것, 아니 찾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유승민#박근혜#문재인#보수의 새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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