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임금은 임금다워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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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이를 폐하고
밝은 이를 세우는 것은
고금에 통용되는 의리이다

廢昏立明 古今通義
(폐혼입명 고금통의)

―‘중종실록’》
 

조선왕조 500년 동안 27명의 임금이 있었는데, 이 중 2명이 반정(反正)을 통해 왕위에서 쫓겨났다. 쫓겨난 이들은 전임 왕으로서의 지위도 모두 상실하여 호칭도 왕이 되지 못하고, 광해군과 연산군으로 남게 되었다. 광해군이 폭군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의 많은 문제 제기가 있지만 연산군이 폭군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럼 조선의 임금 중 폭정을 행하다 쫓겨난 임금으로는 연산군이 유일하다 하겠다.

반정에 성공한 날의 실록에는 연산군의 죄상을 자세히 기록하여 역사에 남겨두었다. 나라의 국정을 논해야 하는 궁궐에 수천 명의 기생을 들여 나라의 안위는 살피지 않고 주색(酒色)에 빠졌으며, 잘못을 간언하는 말을 듣기 싫어하여 바른 말을 하는 신하들을 모조리 내쫓거나 죽였고 심지어 그 관직까지 없애 버렸으며, 아버지의 후궁과 이복동생들을 죽였다. 또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남의 처첩을 거리낌 없이 농락하였다. 도성의 사방 백 리를 금지구역으로 설정하여 사냥하는 장소로 삼고, 천 명이 앉을 만한 누대를 지으면서 수많은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고 수탈하여 굶어죽는 사람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 밖에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죄상을 기록하고 있다.

반정에 성공한 신하들은 중종을 옹립하기 위한 명분으로 당시 나라의 어른인 대비(大妃)를 찾아가 연산군을 폐하고 중종을 새로운 왕으로 세운다는 교지를 받는다. 위의 말은 이 교지의 한 부분이다. 동양의 전통사상 속에서는 누구라도 제 역할을 못 하면 그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있었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라는 말로 임금답지 않은 임금을 부정하였다. 그리고 맹자는 신하로서 임금을 해치는 것이 온당한 일이냐는 질문의 대답으로, 폭군의 대명사인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은 더 이상 임금이 아니라 일개 사내에 불과하며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정벌의 대상이라고 하였다.

어리석고 포악했던 연산군은 더 이상 임금이 아니었던 것이다. 연산군을 폐한다는 교지를 내렸던 대비의 마음도 공자와 맹자의 이 뜻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중종실록#임금#연산군#공자#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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