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집요한 추적으로 물고문 세상에 알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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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탁 치니 억”이라며 거짓말했지만…

박종철 씨의 사인으로 고문 가능성을 처음 보도한 1987년 1월 16일자 11면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DB
박종철 씨의 사인으로 고문 가능성을 처음 보도한 1987년 1월 16일자 11면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DB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동아일보의 잇단 특종 보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7년 1월 15일 치안본부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취지로 박 씨가 숨진 과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16일 고문 가능성을 처음 제기했다. 이어 17일에는 박 씨의 시신을 처음 검안한 의사 오연상 씨(당시 30세)가 “호흡 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됐으며 물을 많이 먹었다는 말을 조사관들로부터 들었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외상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고 복부 팽만이 심했으며 폐에서 수포음(거품 소리)이 전체적으로 들렸다’는 검안서 내용도 특종 보도했다. 사실상 물고문에 따른 죽음이었음을 행간에 담은 기사였다. 결국 치안본부(현 경찰청)는 19일 ‘경관 두 명이 물고문을 해 숨지게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이 발표 속에 은폐된 진실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5월 22일 ‘치안본부 고위 간부들이 비밀회의를 열어 범인 축소, 사건 은폐 조작을 모의했다’, 23일에는 ‘축소·은폐 조작을 법무부와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특종 보도를 잇달아 내보냈다. 이 보도의 여파로 정부는 26일 국무총리,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 내무부 장관(현 행정자치부 장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을 모두 바꾸는 개각을 했다.

 동아일보의 집요한 추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 씨의 1주기가 다가오던 1988년 1월 12일에는 ‘(1년 전) 치안본부장 등 경찰 수뇌부도 고문 치사 사실을 알았지만 은폐했다’ ‘은폐 조작을 알고도 검찰이 상부 지시에 손이 묶였다’고 또 다른 충격적인 특종을 했다. 이 기사로 1987년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돼 처벌을 받았다.

 진실을 캐내 정의를 세운 일련의 보도로 동아일보는 1987년, 1988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권기범기자 kaki@donga.com
#박종철#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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