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일각서 대화재개론… 中은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강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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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의 북핵 대응전략 바꾸자]<6> 북한을 변화시킬 새로운 대화의 틀
대화의 시기와 조건은

2008년 6월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 조치의 하나로 영변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모습.
2008년 6월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 조치의 하나로 영변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모습.
 국제사회는 북한의 끈질긴 핵개발 야욕을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전력화가 계속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불균형이 지속되면 북한의 핵전력을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방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 등 다른 방법도 동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제재와 압박만으론 북핵 폐기가 어렵다면 국제사회는 어떤 조건에서 북한과의 대화라는 요소를 활용해야 할까.

○ “전쟁 중에도 협상하는 미국, 북한과 대화에는 나설 듯”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는 ‘선(先)비핵화-후(後)평화협정 논의’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19일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북-미 대화 재개 요건을 북한의 비핵화라고 재확인했다. 다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사실상 끝났다는 점에서 북핵 해결의 주도권은 내년 1월 취임할 새 대통령에게 넘어가게 된다.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당선되면 북한의 대북 정책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후보의 최측근들을 만난 정종욱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클린턴 후보가 당선되면 국무장관으로 발탁할 가능성이 높은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차관은 북한 붕괴를 거론하는 아주 강경한 인사”라고 말했다.

 미국 외교가에서도 북핵 정책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초대 합참의장을 지낸 마이클 멀린은 지난달 16일 워싱턴 미국외교협회(CFR)가 주최한 ‘북한에 대한 선택-동북아 안정을 위한 중국의 역할’ 보고서 토론회에서 “(북한이) 실질적으로 미국을 위협한다면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아닌 방식이라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북한과의 대화를 아예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북 선제 타격 같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가, 아니면 기존의 선비핵화 입장에서 후퇴해 대화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과 교수는 23일 “북한은 핵문제를 미국과 풀어야 할 문제로 보고 있고, 미국 역시 전쟁 중에도 협상은 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내년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 대북 압박과는 별개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것”이라며 “시기는 내년 초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 교수는 21, 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한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이 비공개 회담을 한 것도 미국이 다음 정권의 대북 정책을 짜기 전에 북한의 요구사항을 파악하는 단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어려운 것보다는 지킬 수 있는 합의부터 만들어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북한 “9·19공동선언으로 돌아가자”

 지금까지 미국의 선비핵화 요구를 무시해온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이 제시한 북-미 대화 조건은 2005년 9월 채택된 “6자회담 틀 속에서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방식으로 북핵 폐기를 이뤄 간다”는 9·19공동선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 그리고 대화와 협상을 위한 문제 해결’이라는 한반도 3원칙을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정이 위협받고, 비핵화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대화와 협상만 강조하는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올해 1월 4차 핵실험 이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병행 추진’을 부쩍 강조하고 있고, 북한은 이를 “중국도 찬성하는 평화협정을 미국이 반대하니 우리는 핵개발로 생존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만 이어가는 셈이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상태에서 미국과 한국이 ‘행동 대 행동’이란 실패한 전철을 그대로 반복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미국의 강경 압박정책이 한계에 부닥치고, 내년 한국 대선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정부가 들어설 경우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언제든지 치고 나올 수 있다.

 정운찬 전 총리는 “북한을 압박만 하는 현행 전략으로는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대북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전 총리는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면서 단계적으론 북핵 동결을 목표로 접촉하고, 장기적으로는 핵무기 폐지와 군비 축소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포기를 전제로 하지 않은 협상은 의미가 없지만 굳이 협상을 한다면 단계적으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중단 같은 실행 가능한 옵션을 올려놓고 풀어 나가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현재로선 북한과의 대화 주장이 언제 본격적으로 나올지,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서 대화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긴 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에서 뒷북을 치지 않고 주도하기 위해선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압박과 대화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밀한 북핵 해법을 담은 로드맵까지 만들어 주변국을 설득할 대비가 지금 바로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워싱턴=이승헌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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