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전하, 알레르기 비염이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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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가을이 시작되면 꼭 진료실을 찾는 얼굴들이 있다. 진료 차트에 일주일 정도의 여유를 두고 해를 바꾸어 가며 찾아오는 이들은 바로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들이다. 알레르기 비염과 감기를 헷갈려하는 하는 이들도 많지만 잘 보면 증상만으로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다. 맑은 콧물, 재채기, 가려움이 반복적으로 생기면 알레르기이고 콧물이 누렇고 걸쭉하게 변해 가면 감기로 보면 된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들에게도 알레르기 비염 증상은 있었을까?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이에서 잇따른 환국(換局)으로 정치판을 다스렸던 숙종의 증상은 알레르기 비염과 유사했다. 숙종 37년, 노론을 이끌었던 이이명이 ‘왕이 콧물을 자주 흘린다’는 얘기를 듣고 그 상태를 물었는데, 왕의 답은 ‘상다구체(常多‘체)’. 즉 ‘콧물과 재채기가 항상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골골 팔십’ 장수왕으로 유명한 영조도 콧물과 재채기로 고생했다. 특히 발작적으로 반복되는 심한 재채기로 무척 힘들어했다. 한의학에도 해박했던 그는 스스로 극심한 재채기의 이유를 “아침에는 추워 두꺼운 옷을 입었다가 낮에는 더워 옷을 벗어던져야 하는 한열(寒熱) 증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실일까?

가을 아침의 차가운 공기는 콧속의 무성한 털 사이를 통과해 좁고 꼬불꼬불한 털의 길(섬모)을 지나가는 과정에서 따뜻해지고 습기를 머금은 채 폐에 도착한다. 만약 외부의 공기 온도 변화가 심해지면 코 안의 점막은 상온(常溫)과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혈액을 모았다 내보내기를 반복하면서 극도로 피곤해지고 예민해진다. 마치 보일러와 에어컨을 반복해서 트는 것과 같은 이치.

콧물과 재채기는 이렇듯 변덕스러운 외부 변화에 대한 면역기능의 신경질적 과민 반응이다. 코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해 공기를 막는 코 막힘 증상도 마찬가지. 양방은 이를 일러 알레르기 비염이라고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면역 기능의 핵심은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다. 반복되는 재채기와 콧물로 고생했던 숙종은 다혈질인 성질을 죽이느라 평생 먹어왔던 냉음료와 찬 성질의 과일(배 등)을 끊어버렸다.

알레르기 증상 중 가장 참기 힘든 것은 가려움이다. 이때 추천되는 약재가 국화의 한 종류인 감국이다. 사군자 중에서 국화는 가을의 덕을 상징한다. 가려움은 피부를 차갑게 하면 진정된다. 감국 또한 그 특유의 서늘한 기운으로 가려움을 진정시킨다. 코 막힘에는 신이화(辛夷花)가 좋다. ‘辛’은 ‘맵다’는 뜻으로 코 막힘을 뚫어주는 강력한 효능을 지닌다. 신이화와 감국을 차처럼 마시면 괴로운 환절기를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알레르기 비염#콧물#환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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