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가 보면 당신계실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7월의 마지막 주와 8월의 첫 주는 세상이 인정하는 공식 휴가철이다. 이때는 거래처가 쉰다고 원망할 수 없고, 창구에 공석이 있다 해도 이해할 수 있다. 추위를 피하는 피한철보다 더위를 피하는 피서철이 유명한 걸 보니 더위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피서는 부채와 선풍기와 에어컨뿐이다. 사정이야 다양하겠지만 피서도 못 가는 신세를 한탄하는 것은 더위에 울화를 보태는, 위험한 일이다. 정신건강에는 피서를 가지 않을 억지 이유라도 상상해 보는 것이 훨씬 이롭다. 상상이 잘되지 않는다면 이 시를 읽어보자. 이 시에는 남들 다 가는 바다를 거부하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지금 서해는 어떨까. 동해만큼, 해운대만큼 북적거릴까. 머드와 갈매기가 있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신나게 놀고 있을 거다. 그런데 이 시인은 서해에 가 본 적이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갈 생각이 전혀 없다. 물론, 무척 가고 싶다. 서해 바다와 개펄을 알고 있는 데다 직접 보고도 싶다. 그러나 앞으로도 서해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당신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사실, 이 시의 화자는 서해뿐만 아니라 모든 아름답고 좋은 곳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랑하는 당신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많은 곳을 가본다면 당신이 있을지도 모를 공간이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어디에도 당신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시인은 사랑꾼, 그는 잃어버린 당신을 여전히 마음속에 키우고 있다. 서해에 가는 대신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남들은 다 놀고 있는데 나만 일한다면 속상하다. 그 마음을 어루만지려고 이 사랑꾼은 속삭인다. 유럽의 고성, 대륙의 협곡, 태평양의 에메랄드빛 바다. 우리는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안 가는 것이다. 바로 사랑했던 그 사람이 거기 있을까 봐, 내 사랑만은 그곳에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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