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가짜 그림엔 生氣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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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수묵화로 알려진 독화로사도. 원본의 쇠백로가 잘 보이도록 흰선으로 처리했음. 이동천제공
고려시대 수묵화로 알려진 독화로사도. 원본의 쇠백로가 잘 보이도록 흰선으로 처리했음. 이동천제공
안영배 전문기자
안영배 전문기자
올해 들어 미술계가 유난히 시끄럽다. 천경자, 이우환 등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위작(僞作) 논란에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代作) 소동까지. 며칠 전에는 국내에 전시 중인 천 화백의 작품 ‘뉴델리’도 위작이라는 주장이 나와 불에 기름을 부었다.

사실 위작과 진작(眞作)을 가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과 감정가들이 진짜라고 해도 화가가 가짜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위조범이 붙잡히고 가짜 증거들이 많은데도 화가 본인이 진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진위를 가리는 예술품 감정가들의 상당수는 위작과 진작은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근거는 오랜 경험과 직관이다. 가짜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진품을 대할 때와는 달리, 좋지 않은 느낌이 온다는 것이다. 이런 안목감정은 ‘예술 풍수론’과도 연관이 있다.

산수화(山水畵)는 동양에서 탄생했다. 그건 자연의 기운(氣運)을 담아두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감정가들이 작품에서 받는 직관적 느낌이란, 예술혼을 발휘한 ‘작가의 기운(에너지)’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철학자이자 화가인 종병(宗炳·375∼443)은 산수화를 도(道)를 드러내는 신물(神物)로 보았다. 화가가 아름다운 산천을 눈으로 감상하고, 자연에 깃든 신령스러움까지 마음으로 깨달아 화폭에 담아내면, 아름다움과 신령스러움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그림은 감상자에게도 감응해 화가처럼 동일한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는 것이다(종병의 화론서 ‘화산수서’). 이런 주장은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풍수의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과도 맥이 통한다.

사실 풍수와 산수화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산과 물을 다루고, 그 속의 생기(生氣)를 중시한다. 원나라 때 산수화가로 명성을 떨친 황공망(黃公望·1269∼1354)은 아예 “그림 속에도 풍수가 존재한다”면서 풍수의 명당 기운을 그림에서도 구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또 북송(北宋)의 화가 곽희(郭熙·1023∼1085)는 “산수화도 풍수처럼 발복(發福)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림을 통해 복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산수화가 기운을 담고 있다는 것은 필자도 체험한 바 있다. 2014년 5월 중순, 서해 변산의 선유도에서 이 지역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고려왕릉 터를 찾는 풍수답사에서였다. 조선시대에 만든 고지도에 분명히 ‘고려왕릉’이라는 표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터였다. 필자는 면밀히 답사한 끝에 선유도 망주봉의 두 봉우리 가운데에 있는, 말안장처럼 생긴 둔덕을 지목했다. 풍수로 볼 때도 길지(吉地)인 데다,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잘 조화된 곳이었기 때문. 오랜 세월을 거치며 흙으로 뒤덮였지만 고분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여럿 발견했다. 필자는 이를 문화재청에 알리고, 본격적으로 발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필자가 지목한 지역이 놀랍게도 유일한 고려시대 수묵화로 알려진 ‘독화로사도(獨畵鷺S圖)’의 중심부와 같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과 한국에서 미술품 감정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이동천 박사는 최근 출간한 ‘미술품 감정비책’에서 ‘독화로사도’가 선유도의 망주봉을 배경으로 그린 실경 산수화라고 했다. 그는 “송원(宋元) 시기의 산수화는 풍수론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이 화론(畵論)을 들여온 고려 사람들도 산수화에 자연스럽게 명당의 생기를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명당으로 알려졌을 ‘고려왕릉’ 자리를 그림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림 속 물가에 서 있는 새 역시 여름 번식기 때만 두 가닥의 장식깃이 생기는 쇠백로라는 점에서, 자손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풍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했다(사진 참조).

그림에서 생기를 취하려는 행위는 지금도 계속된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중국계 부자들이 재물과 풍요를 기원하며 여성의 나체 그림을 사적인 공간에 걸어놓고 감상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남성 입장에서 보자면 여성의 기운은 풍요와 재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있다. 좋은 생기가 있는 그림은 감상자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그림은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기에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 그린 가짜 그림이 좋은 기운을 담고 있을 리가 없다. 얼마 전 천경자 화백을 기리는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한 적이 있다. 천 화백 고유의 천기(天氣) 에너지가 들어 있는 그림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그림도 있었다. 필자의 풍수적 감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독화로사도#고려시대#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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