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등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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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 신달자(1943∼ )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많은 사람들이 신달자 시인을 안다. 좋아하는 이도 참 많다. 언젠가 한 지역에서 토크 콘서트를 연 일이 있었는데 그를 보러 몇백 명의 청중이 자리를 채워주셨다. 대중의 사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알고 ‘등잔’이라는 시를 읽으면 원래 의미를 충분히 알기 어렵다. ‘인사동에서 등잔을 사 왔는데 한동안 방치하다가 나중에 불을 붙여 보았다. 그랬더니 잘 켜지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시를 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본래 시란 남들이 못 보았던 것, 나에게 안 보였던 것을 발견하는 일인데, 이 시도 정말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데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발견의 대상은 돈 주고 산 ‘등잔’이 아니다. 시인이 발견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시인은 어린 나이에 화려하게 등단했고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힘든 세월을 견뎌야 했다. 20년이 넘게 남편의 병간호를 해야 했고, 10년 가까이 아픈 시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다. 남편의 도움 없이 아이들을 키워야 했고, 경제적으로 가장의 역할도 해내야 했다. 삶의 모든 책임이 그녀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 자신을 잊었다. 시의 한 구절처럼 나 자신은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그런데 버린 등잔의 묵은 먼지를 닦고 어여쁘다 만져주는 사이 그 속에 갇혔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 느낀 ‘황홀’이란 등잔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가엾고도 어여쁜 나를 향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는 눈부시게 읽는 것이 아니라 목이 메어 읽는 것이 맞다. 나조차 방치했던 나를 다시 찾으니 절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 전에, 나부터 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유하자면 이 시가 꽃이라면 아마도 이런 메시지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소중한 나여, 나를 잊지 마세요.”
 
나민애 문학평론가
#신달자#등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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