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불황엔 폭력물이 흥행한다는 영화계 속설, 정말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 경제적 불황은 폭력이나 테러에 비해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위협이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덜 저항적이다.―박스오피스 경제학(김윤지·어크로스·2016년) 》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후보가 외쳤던 이 구호는 간혹 그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곤 한다. 영화도 그중 하나다. 한 지인은 영화 ‘곡성’의 인기 이유를 경제 불황에서 찾았다.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정한 환경에 처할수록 사람들은 어둡고 폭력적인 내용의 영화를 보며 오히려 심리적 안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TV 시청자의 프로그램 선호도는 유의미하게 변화했다. 학자들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내 텔레비전 시청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9·11테러 이후 심각하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방송물의 시청률이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테러나 폭력과 달리 경기 불황은 영화 장르에 대한 수요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2008년 경제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독일, 영국, 스페인에서 개봉한 영화의 흥행 여부를 분석했더니 경제위기를 거친 뒤에도 사람들의 영화 선호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범죄나 테러 같은 폭력은 직접적인 위협인 만큼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저항하고 반응하지만 경제 불황은 물리적 안전을 직접 위협하지는 않기 때문에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경제 불황은 이미 우리의 삶에 너무 익숙해졌고, 너무 자주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사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심각한 내용의 영화를 이전보다 더 많이 만들었다가 후회를 했다. 막연히 불황기엔 그런 영화가 더 많이 소비될 것으로 오판했다가 ‘헛발질’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불황기에도 밝은 영화를 생각보다 많이 찾는다는 것을 희망적인 요소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엔 무리가 따를 것이다. 영화에 대한 선호도와 실제 삶의 양상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이들에게 경제 불황은 테러만큼이나 물리적 안전을 위협하는,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폭력이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책#경제적 불황#폭력물#흥행#영화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