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사고 급증의 계절… ‘낮 12시 북한산行 50代’ 조심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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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국립공원 5년간 산악사고 분석]전국 21개 국립공원 5년 사고 분석… 돌연사 많은 시간-장소-연령 확인

산행 도중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발병해 죽음에 이르는 산악 돌연사가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일보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 21개 국립공원에서 접수한 산악사고 1412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돌연사가 이 기간에 발생한 산악 사망사고 133건의 57.1%인 76건을 차지했다.

산악 돌연사는 평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의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서 많이 발생하는데, 평소 별다른 자각 증상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산에 올랐다가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발병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산악 돌연사의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산악 돌연사의 경우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에 집중됐고 5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비만, 고지혈증 등 위험인자를 많이 지닌 중장년층 남성에게서 돌연사가 많다. 아무리 가벼운 산행이라도 등산을 시작하면 심장에 무리가 가기 쉬운데, 특히 산행을 시작하고 하산할 무렵에 체력 소진으로 인해 돌연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국 국립공원 코스별로 보면 북한산 지리산 한라산 등지에서의 돌연사가 많았다.

또한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접수된 월별 사고 현황을 보면 1∼4월 월평균 56.7건이었던 사고 건수(사망 및 탈진, 골절)가 5월에 109건, 6월에 116건으로 급증했다.

 

▼ 북한산서 한해 6명꼴 숨져… 인수봉-노적봉 가장 위험 ▼

인수봉에서의 사고가 많았다. 부상자 41명을 비롯해 추락사 3명, 낙석으로 인한 사망도 1명 있었다. 인수봉에는 초보자부터 노련한 등반가까지 즐겨 찾는 80여 개의 길고 짧은 다양한 암벽 루트가 있다. 휴일이면 많게는 200∼300명의 등반가가 몰려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다. 윤재학 코오롱 등산학교장은 “누구든지 암벽 등반에 입문을 하고 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인수봉이다. 한국 암벽 등반의 역사를 대표하는 상징적 지역이기 때문이다. 초보자들도 그만큼 많이 몰리기 때문에 사고도 잦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일부 코스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기 때문에 바위가 닳아 미끄러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난도가 높아진 구간들이 있다. 미끄러운 데다 사람들까지 많이 몰리니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산 국립공원 인수 대피소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강균석 반장은 “길이 미끄러운 것도 문제지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이 더 문제다. 사람들이 몰리면 길을 비켜주기 위해 등반을 서두르게 되고 서두르다 보면 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인수봉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그 대안으로 눈길을 끌었던 노적봉에서도 사고가 빈발했다. 윤 교장은 “인수봉에 비해 대체로 완만한 노적봉은 산악인들이 즐겨 찾던 곳은 아니었다. 인수봉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새로운 곳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최근 10여 년 전부터 20여 개의 코스가 개척됐다. 이 중에는 자연스러운 바윗길을 따라 개척된 코스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부자연스럽게 만든 코스가 있어 사고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백운대 염초봉 숨은벽 등의 바위능선 구간(리지)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수직 암벽에 비해 옆으로 이동하는 구간이 많은 이 지역에서는 방심 탓에 등산 장비를 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 관계자는 “수직 암벽에 비해 옆으로 이동하는 구간이 많은 이 지역에서는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도 ‘이까짓 거쯤이야’ 하는 방심 때문에, 혹은 귀찮아서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 지리산 종주 세석평전-장터목서 3명 돌연사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향해 오르는 대표적 코스인 오색∼대청봉과 한계령∼대청봉 구간에 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특히 오색∼대청 구간은 부상 22명과 돌연사 2건이 발생해 설악산 내 최다 사고지로 분석됐다. 이 구간은 다른 곳보다 코스가 짧은 대신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김기창 계장은 “한계령 휴게소 쪽에서 대청봉에 오른 뒤 코스가 짧은 오색 쪽으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체력을 이미 많이 소진한 상태에서 급경사 지역을 내려오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단풍 관광객과 불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흘림골과 봉정암에서도 사고가 빈발했다. 국도변에 있는 흘림골은 접근성이 뛰어난 데다 빼어난 계곡미와 주변 풍경을 지녀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오르막 구간이 많다. 봉정암은 국내 5대 적멸보궁(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 중 하나로 나이 지긋한 불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지만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해발 1244m)인 데다 등산로도 쉽지 않은 곳이라 주의를 요한다.

설악산에서도 특히 위험한 곳으로 꼽히는 곳은 용아장성이다. 높이 수십 m의 바윗길이 좁게 이어지는 이곳은 사고 위험이 높아 전면 출입금지 지역이다. 지난 5년간 이곳에서 부상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3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모두 사망(추락사) 사고뿐이었다.

천불동계곡과 공룡능선 사이를 이어주는 바위 능선 지대인 천화대, 길게 이어지는 너덜바위 지대가 있는 서북능선과 대승령 일대의 장수대 일원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희운각 대피소는 공룡능선과 소청봉 사이의 깊은 골짜기에 있다. 힘들여 대청봉을 오른 뒤 소청봉을 지나 희운각 대피소로 향하는 길은 급격한 내리막길이다. 이때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 이미 체력을 많이 쓴 상태에서 난도가 높은 공룡능선이 시작된다. 시간과 체력을 적절하게 안배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기 쉽다.

지리산에선 세석평전과 장터목 일대에서의 사고가 많았다. 세석평전과 장터목은 약 25km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 코스(노고단∼임걸령∼벽소령∼세석평전∼장터목∼천왕봉)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공단 최수원 과장은 “지리산 종주 코스의 인기가 높은데, 이러한 코스의 끝부분에서 지친 등산객들이 사고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종주를 하지 않을 때에도 세석평전과 장터목은 상당한 체력을 쓴 뒤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보통 당일 코스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때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평전과 장터목을 지나 천왕봉에 오르는 등산객이 많다. 지리산의 계곡미와 능선의 장엄함을 느끼며 빠른 시간에 천왕봉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코스를 이용할 때도 급경사의 산기슭을 오른 뒤에야 세석평전과 장터목에 닿는다. 특히 한신계곡에서 세석평전에 이르기까지의 기슭 후반부는 매우 가파르다. 세석평전 일대에서는 부상 6건과 돌연사 3건이 발생해 부상자 대비 사망 비율이 높았다.

종주를 시작한 등산객들이 대개 1박을 하고 가는 중간 지점인 벽소령에서도 하루 산행이 끝날 때쯤 지친 등산객의 사고가 많았다.

천왕봉과 중산리를 잇는 중산리 코스(약 5.4km)의 개선문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중산리 코스는 짧아서 종주를 마친 사람들이 하산 코스로 많이 이용하지만 지리산에서도 손꼽히는 급경사 지역이어서 체력과 심장이 약한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 한라산 최장구간 성판악 코스 탈진사고 많아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두 코스인 성판악 탐방로와 관음사 탐방로에서 사고가 많았다. 성판악 탐방로는 9.6km로 한라산에서 가장 긴 코스다. 성판악 탐방안내소에서 속밭 대피소, 사라오름 입구, 진달래밭 대피소를 거쳐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5∼8월에는 오후 1시부터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길이 통제된다. 하산 길에서의 일몰 등을 고려한 것이다. 성판악 탐방안내소에서 진달래밭 대피소를 통과하기 까지는 보통 3시간이 걸린다. 체력과 산행 속도를 고려하여 오전 일찍 넉넉하게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라산 국립공원 관계자는 “오전 늦게 입산하신 분들이 서둘러서 진달래밭 대피소를 통과하려고 욕심을 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초반부터 체력을 급격히 소진하기 때문에 탈진 가능성이 높아진다.

속리산 월출산 월악산에서는 사망 사고 비율이 높았다. 북한산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등에서는 전체 사고 중 사망 사고 비율이 7.1∼15.8%였으나 속리산은 30%, 월출산은 26.6%, 월악산은 25.8%에 달했다.

속리산은 계곡에서 익사 사고, 문장대 등에서 돌연사가 발생했고, 급경사 지역이 많은 월출산과 월악산에서는 돌연사와 추락사가 모두 발생했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에서는 지난 5년간 2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모두 전남 고흥의 팔영산(해발 608m) 일대에서 발생했으며 2건 모두 돌연사였다. 팔영산은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봉우리가 잇달아 있어 주의를 요한다.

 

 
○ 등산중 심장마비 막으려면

산에 오르기전 충분한 준비운동 필수… 가슴 뻐근한 통증 느끼면 즉시 중단을

돌연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병이다. 돌연사 관련 전문가인 인제대 상계백병원 심장내과 이혜영 교수는 “‘급사’ 혹은 ‘급성 심장사’라고도 불리는 돌연사로부터 생존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 통계로 보았을 때 1% 미만이다. 응급체계가 잘 확립되어 있는 미국에서조차 생존율이 5% 정도로 낮게 보고될 정도로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다”고 설명했다.

돌연사의 원인으로는 심장세포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혀서 산소와 영양소 부족으로 심장근육세포가 죽어가는 ‘심근경색증’이 먼저 꼽힌다. 돌연사 원인의 70∼8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돌연사가 발생하기 수일 또는 수개월 전부터 심근경색 등으로 인한 흉통, 호흡곤란, 피로감 등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바쁜 일상에 쫓겨 미리 진찰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또 “25% 정도의 환자는 아무런 조짐이 없다가 첫 증상이 나타났을 때 돌연사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관상동맥 질환은 고혈압, 고지혈증, 흡연, 당뇨병, 비만, 과도한 스트레스, 운동 부족 등에 의해 가속화된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인자를 지니고 있으면서 갑자기 무리한 산행 등을 하는 경우에는 돌연사의 위험이 높다.

대한산악연맹 등산의학위원장을 지낸 윤현구 제일병원 내과 교수는 “갑작스러운 산행은 심근의 산소 요구량을 증가시켜 더 많은 혈액 공급을 필요로 한다”며 “심혈관이 좁아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부하는 심장 기능의 이상을 불러올 수 있다. 평소의 건강 관리 및 산행 전 워밍업과 스트레칭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산에서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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