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기인 작곡가’ 사티가 사랑한 모델 발라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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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잔 발라동이 그린 에리크 사티 초상화.
쉬잔 발라동이 그린 에리크 사티 초상화.
‘세 개의 짐노페디’로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 에리크 사티(1866∼1925)의 삶은 수많은 독특한 얘깃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눈에 띄는 몇 가지만 꼽아 봐도 다음과 같습니다. 명문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지만 선생들이 ‘이렇게 피아노를 못 치는 쓸모없는 학생은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자퇴했습니다. 젊어서는 안데르센 동화에 심취했고 나이 들어서는 건물 모형이나 도면을 캐비닛 하나 가득 채우는 게 취미였습니다. 악보를 840번 반복 연주하도록 표시한 작품(‘벡사시옹’)도 있습니다. 지시에 따르면 연주에 10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계속할까요. 젊어서는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샹송을 작곡해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쏠쏠한 수입을 얻지만 나이 든 뒤에는 ‘쓸모없는 곡’이라고 이 노래들을 외면합니다. 친척이 죽으면서 적지 않은 유산을 물려준 뒤로는 최신 유행의 양복과 중절모, 우산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녀 ‘벨벳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에는 늘 망치를 넣어 다녔습니다. ‘불의의 습격’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는 겁니다. 식습관도 독특해서 우유나 죽 등 ‘흰 음식’만 먹었다고 합니다.

그의 유일한 연애담도 독특합니다. 인물화 모델로 유명했던 여성과 하루 저녁 데이트를 한 뒤 다짜고짜 ‘결혼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거절당했죠. 재미있는 것은 이 여성의 행동입니다. 며칠 뒤 사티의 이웃으로 이사를 옵니다. 그 뒤 나름 잘 지냈던 모양입니다. 이웃이 관계를 청산하는 방법은? 이 여인은 이후 다시 이사를 가버렸고, 사티는 시름에 잠겼습니다.

이 여성이 바로 르누아르와 로트레크 등의 모델이 되었던 쉬잔 발라동입니다. 스스로도 화가로 활동했으며, 풍경화가로 이름을 날린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발라동이 사티와 만났을 때 위트릴로는 이미 열 살이었으니, 하마터면 사티가 그의 양부가 될 뻔했습니다.

17일은 이 사티의 탄생 150주년 기념일입니다. 지난해 그의 서거 90주년을 맞이해 ‘배경음악’ ‘환경음악’의 시조였던 그의 역할을 소개했습니다만, 오늘은 그의 특이한 개인적 면모를 살펴보았습니다. 투명하고 명상적인 ‘짐노페디’를 들으면서 봄날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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