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기업가의 집터와 회사의 命運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명당 터로 소문나 재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 한남동 주택가.
명당 터로 소문나 재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 한남동 주택가.
안영배 전문기자
안영배 전문기자
조선·해운·철강업 등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경영자의 책임과 사운(社運)에 대해 생각해본다. 기업의 위기는 경영 여건과 산업 구조가 급변하는데도 회사와 조직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전통 술학(術學)에서는 창업주 혹은 전문경영인의 운이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본다. 기업의 최고 수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경영자의 운을 중시한 대표적 인물로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경영자가 운을 잘 타고 나가기 위해서는 “운이 오기를 기다리는 둔한 맛(鈍)이 있어야 하고, 운이 트일 때까지 버텨내는 끈기와 근성(根)이 있어야 한다”(‘호암어록’)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운둔근(運鈍根)’이라는 친필 휘호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건강식품판매업으로 일본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오른 사이토 히토리(齋藤一人) 역시 운을 얘기했다. 그는 운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운 경영법’을 주창했다.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서양인 중에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극단적인 소득 불평등의 요소로 개인 생산성, 정보 등을 선취하는 권력, 그리고 우연한 행운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운을 성패의 요소로 꼽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모든 사람에게는 운이 좋은 때와 그렇지 못한 때가 계절의 변화처럼 어김없이 다가온다. 크게는 인생 60년을 한 사이클로 묶어서 여름(희망 15년)과 가을(결실 15년)의 30년을 상승운으로, 겨울(인내 15년)과 봄(노력 15년)의 30년을 하락운으로 본다. 중국 속언인 ‘하동삼십년 하서삼십년(河東三十年 河西三十年·황허의 동쪽에 있던 마을이 30년을 지나 황허 서쪽에 있게 되다)’이란 말도 상승과 하강의 순환 주기를 비유한 것이다.

인생 사계절 중 성공 가도를 줄곧 달려온 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가 있다. 겨울 15년이다. 바로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둔과 근이 필요한 시기다. 동물로 치면 동면하는 계절인데 동면을 하지 않고 여전히 가을인 것처럼 질주하면 혹독한 시련이 기다린다.

수많은 근로자의 밥줄을 책임지고 있는 기업인의 운을 예로 들어보자. 한때 ‘샐러리맨 신화’로 주목받은 A그룹과 B그룹의 두 창업주는 벌이는 사업마다 승승장구하며 계열사 수십 개를 거느린 재벌로 성장했다. 인생의 여름과 가을을 알차게 보낸 결과다.

이들은 정상의 위치에 오르자 재벌 회장의 격에 어울리는 집을 물색했다. A그룹 회장은 우리나라 재벌들이 모여 사는 서울 남산 자락의 한남동에, B그룹 회장은 강남의 부자 밀집 지역에 대저택을 마련했다. 그런데 새집으로 옮겨간 후부터 기업 경영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사들인 기업이나 새로 벌인 사업들이 말썽을 부렸다. 결국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두 그룹은 부도를 내고 말았다. 두 회장 모두 인생의 겨울 시기에 접어들어 벌어진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여름과 가을의 호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겨울의 하강 운기에 이르면 혼탁하고 유해한 천기(편의상 천살·天殺로 칭함)나 암반수맥대 등 유해한 지기에 노출된 집을 찾아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두 회장이 새로 사들인 집터는 이전의 집보다 규모는 크고 화려했으나 공통적으로 천살에 노출돼 있었다. 이런 현상은 스타급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등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천살 터에서 살다 보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집, 독선, 불통의 성향이 깊어진다. 심한 경우 판단력까지 무뎌진다. 사람의 건강과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양택(집)이기 때문이다. 사업 초창기에는 필자와도 인연이 있었던 A그룹 회장은 직원과의 소통도 줄어들고, 영입한 인재들도 적잖게 회사를 떠났다는 얘기를 나중에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또 B그룹으로부터 경영 컨설팅을 의뢰받아 회장을 면담했던 한 컨설턴트는 “타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이 가득 차 컨설팅에 회의가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겨울의 운세 꺾임과 집터의 나쁜 기운으로 회장들의 판단력에 문제가 생긴 결과다. 물론 이런 해석은 경영자의 운과 양택 풍수의 눈으로만 보았을 때 그렇다는 전제하에서다.

반면 인생의 겨울을 안락하게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조건 없이 적선(積善)을 하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인들의 경우는 겨울에 접어들면 스스로 둔과 근을 실천하거나, 상승운에 있는 전문경영인이나 후계자를 내세워 겨울을 난다. 미국의 빌 게이츠 같은 이가 본받을 만한 사례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집터#명운#한남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