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중국에 일희일비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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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보는 눈이 한 달 새… 기대 실망, 분노, 안도로 널뛰기
중국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지나친 경원도 국익에 도움 안돼
중국이 국제사회 일원으로, 진정성 갖고 북핵 폐기 앞장서도록
냉정하고 끈기 있게 지켜봐야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안에 찬동하자 중국을 보는 눈이 또 달라졌다. 북한이 7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채 한 달도 안 돼 중국에 대한 국내 분위기는 기대, 실망, 분노를 거쳐 안도로 방향을 트는 것 같다.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핫라인 불통,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를 둘러싼 갈등, 환추시보와 주한 중국대사의 겁박 등 고비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인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데도 멀미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태도를 놓고 일희일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첫째, 중국의 결정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과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중국의 입장이 바뀐 것은 결코 한국이 기대하고 실망하고 분노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착각이고, 그렇게 보이는 것은 착시다. 중국의 결정이 ‘이번에는’ 한국의 희망과 일부 합치했다고 보는 게 옳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우리의 국익을 위해 경시해서도, 경시할 수도 없는 국가라는 사실이다. 한중 관계가 자칫 시류에 영합한 내셔널리즘에 휘둘린다면 한국 외교의 운신은 더 힘들어진다. 이는 국익을 해친다. 중국과의 외교에서 단기적 득실이나 최고지도자 간의 친분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는 박근혜 정부 3년이 증명한다.

중국이 북한을 외로운 섬으로 만들어 핵을 포기하게 만들겠다는 강력한 계획에 동참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중국은 북한의 체제 붕괴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내에서 북한을 포기하자는 기조론(棄朝論)과 북한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옹조론(擁朝論)이 맞선다고는 하나 말의 성찬일 뿐이다. 꾸짖어 가며 옆에 두자는 매조론(罵朝論)이 진짜 속내다. 중국은 한미, 한미일 공조의 틈새를 벌리기 위한 시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국 학계는 한국을 솔깃하게 만드는 ‘한중동맹론’을 버전을 바꿔 가며 계속해서 양산할 것이다. 중국은 이번에도 약속어음에 서명을 한 것에 불과하다. 예전과는 달리 북한에 뒷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근거는 아직 없다. 중국의 진정성은 냉정하고 끈질기게 지켜볼 대목이다.

중국은 벌써부터 한국과 미국에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을 동시에 논의하라는 제안이 그렇다. 핵 포기가 먼저라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요구다. 사드 배치 유보에 암묵적으로 합의했을지도 모른다는 미중 빅딜설은 한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 미국의 태도는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강대국이 하는 외교는 참 편하다. 외교 방향을 트는 데 고민할 것도 별로 없고,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 점을 간과했다가 종종 후회한다.

북핵 문제는 남북문제를 넘어 동북아에서 점점 격해질 미중의 전략적, 구조적, 상시적 대립의 소산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미동맹, 한미일동맹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대롱을 통해 중국을 보는 이관규천(以管窺天)의 잘못을 피할 수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얼마 전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2016년의 주요 이슈 10개를 제시했다. 협력과 갈등이 일상화되는 동북아시아, 중국 뉴노멀의 향배, 북한 병진정책의 딜레마, 미국 대선과 국제질서 향방, 평행선을 달리는 미중 경쟁의 뉴노멀, 중동 혼란의 일상화, 통합에서 분열로 가는 유럽연합, 포스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제하의 국제 통상질서 재편, 새로운 기후변화 레짐의 등장, 저·중강도 사이버전의 일상화 등이다. 중국을 빼고는 논할 수 없는 이슈가 대부분이다.

북한의 핵 포기는 긴 여정이다. 서방이 똘똘 뭉쳐 이란의 핵개발을 단념시키는데도 최소한 13년이 걸렸고,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에 맞서 50년 이상을 버텼다. 19세기 왕조국가 북한이 어떻게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든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 중국에 대한 감정까지 통제할 수는 없으나 감정이 정책을 지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다만 중국이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되길 포기한다면 비판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최근 국제 정세를 보는 국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의 자주적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예전보다 커졌다. 국력 신장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지만 쉽게 이룰 목표가 아니다.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분석, 정책결정자들의 유연하고 시의적절한 결단, 중론에 기반한 국론의 통일과 협력 등이 필요하다. 중국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그런 과정의 중요한 화두임에 틀림없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중국#북핵#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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