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36>시어머니를 며느리 삼는 상상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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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내 며느리’라는 드라마가 화제란다. 제목부터 어이가 없다.

방송사의 소개를 보니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뒤바뀐 고부 사이, 며느리로 전락한 시어머니와 그 위에 시어머니로 군림하게 된 며느리가 펼치는 관계 역전의 드라마’라고 한다. 여전히 뭔 소린가 싶어 그간의 내용을 추려 보았다.

막장 시월드에서 갑질하던 시어머니(어린 나이에 결혼한)와 아들 내외가 있었다. 아들이 죽고 며느리는 손자를 데리고 재혼을 한다. 시어머니도 망나니 재벌 3세(창업자 딸의 아들)를 꼬드겨 결혼에 성공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며느리가 재혼한 새 남편이 그 재벌 창업자의 숨겨진 늦둥이 아들임이 밝혀진다. 따라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였던 두 사람이 각자 재혼을 통해 조카며느리와 시외숙모 사이로 다시 만나게 된 셈이다.

악역 시어머니는 일곱 살이나 속였던 나이는 물론이고 요조숙녀 행세까지 탄로 나며 자기 무덤을 파게 된다. 망나니 재벌 3세가 그녀를 다그치며 시청자를 대신해 황당무계함을 표현해준다. “너, 며느리한테 숙모님이라 부르고 손자한테 형수님 소리를 들은 것이냐? 무슨 이런 콩가루 집안이 다 있냐?”

지상파에서 아침에 방송되는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15%에 이른다. 거의가 여성인 시청자들의 반응은 “욕하면서 자꾸 보는 꿀재미”다. 그런데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입장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보고 또 봐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남자들에게는 없는 상상력이다.

남자들에게 장유유서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성들 사이에선 이 개념이 다르다. ‘나이 순’의 질서도 언제든 결혼 한 방으로 간단히 뒤집히곤 하는 게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세계였다.

며느리를 얻는 시어머니들은 속으로 바짝 긴장한다. 친인척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 등장한 젊은 여성에게 위협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아이 엄마 모임에서도 언니 동생처럼 좋아 죽는 사이로 보인들 집에 돌아오면 좋게 말해 ‘그 여자’다.

힘과 실력, 연륜 등으로 상하를 겨루는 남자의 세계는 오히려 승부가 간단하다. 반면 여자의 세계에선 위아래 없이 모든 분야에 걸쳐 일일이 길고 짧은 것을 재봐야 한다. 져도 수긍하지 않으며 이겨도 안심하지 못한다. 그런 감정싸움을 평생에 걸쳐 이어간다.

“여자들의 그런 걸 내가 왜 쓸데없이 알아야 하느냐”며 화를 내는 친구가 간혹 있다. 집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것을 모르는 한,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왜 당하는지도 모르고 한없이 휘둘린다.

왜 그런지 이해하면 최소한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설 수 있는 여유는 가질 수 있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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