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기자의 달콤쌉싸래한 정치]오픈프라이머리는 개혁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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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프라이머리 승부처는 인지도… 사실상 현역 의원이 절대적 유리
현역 기득권 배제 안하면 하나마나
더 큰 문제는 당원 동원 경쟁으로 ‘검은돈 선거’가 판칠 수 있다는 것

이재명 기자
이재명 기자
지난해 7월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맞붙은 새누리당 대표 경선 당시 청와대는 서 최고위원이 이길 거라고 믿었다(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경선 직전 대통령정무비서관실은 서 최고위원이 밀린다고 보고했지만 ‘위’에서는 좀처럼 믿지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경선장을 찾아 막판 대역전을 노렸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김 대표가 무려 1만5000표 가까이 서 최고위원에게 앞선 ‘원사이드 게임’이었다.

김 대표의 낙승엔 그의 대표 공약이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이다. 당의 실권자가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니 ‘박근혜 키즈’인 현역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눈치를 덜 보며 김 대표를 지지할 수 있었다. ‘각자 능력으로 공천을 받자’는 김 대표의 ‘독립선언’이 적중한 것이다. 정치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내년 4월 총선을 8개월 앞두고 이미 ‘공천 전쟁’은 시작됐다. 곳곳에서 현역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민 정치 신인들의 호언장담이 들려온다. ‘이미 중앙당의 언질을 받았다, 지역에서도 출마하라고 성화다, 나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지역주민들에게 곁눈질이라도 받으려면 허풍이라도 떨어야 하는 게 정치 신인들의 처지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은 바람결에 날아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도입되면 승부처는 ‘인지도’다. 여론조사든, 체육관 선거든 이름이라도 알아야 찍을 것 아닌가. 현역 의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유다. 김 대표도 당내에서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 이렇게 면박을 준다. “현역인 느그들이 젤 유리한데 와 김 빼는 소리를 하노!”

현역 의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역(逆)선택이다. 여야가 동시에 경선을 하지 않으면 야당 지지자들이 몰려와 경쟁력 없는 여당 후보를 선택할 거란 얘기다. 하지만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거나, A당 당원이 B당 경선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면 역선택 논란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진짜 문제는 동원 선거다. 오픈프라이머리를 가장 고대하는 건 관광버스 업계일지 모른다. 지역 투표소마다 당원들을 버스로 실어 나르는 진풍경이 빚어질 테니 말이다. 후보들 간 당원 모집 경쟁이 불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시 ‘검은돈 선거’가 판칠 수 있다는 얘기다. 본선에 앞서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후보들이 즐비할 게다. 김 대표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자기 세력을 투표소로 불러내는 것도 정치력이다. 그것도 못하면서 무슨 국회의원을 하려고 하느냐”고 받아친다. 경선 낙선자들이여 낙담하지 마라. 곧 재·보궐선거가 있을 테니….

더욱이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면 선거를 두 번 치르는 꼴이다. 여야가 동시에 경선을 하면 360억 원 이상, 여당 단독으로 해도 선거 관리비용엔 큰 차이가 없어 300억 원가량 혈세가 든다. 유능한 새 피를 수혈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뻔한 결과에 수백억 원을 쓴다면 누가 동의하겠나. 19대 의원들이 걸출하다면 그나마 덜 아깝다. 그러나 19대 국회는 무능과 비효율의 정치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존재감 없는 의원이 가장 많은 국회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결국 오픈프라이머리 자체가 개혁일 순 없다. 명분은 개혁적일지 몰라도 결과는 정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개혁은 결과이지 과정이 아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두고 여야는 ‘사회적 대타협의 결과’라고 자화자찬했지만 국민은 싸늘했다. 기대 이하의 결과 탓이다.

물론 인위적 물갈이가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는 있어야 한다. 임기 4년간 꿈과 끼를 키우는 ‘자율학기제’를 보낸 게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지역의 조직화된 소수에 의해 평가가 이뤄진다면 의원들은 실권자에게 줄을 서지 않는 대신 소지역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개혁을 바라는 다수 국민의 바람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엘머 샤트슈나이더의 말이다. “모든 싸움은 두 부분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싸움에 적극 가담하는 소수고, 다른 하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는 구경꾼이다. 싸움의 결과를 결정하는 건 대개 구경꾼의 몫이다.”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배제하지 않는 한 오픈프라이머리로 구경꾼을 모을 순 없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오픈프라이머리#개혁#기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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