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수락산과 삼각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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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서울 동북쪽에는 수락산이 있다. 여기에 올라서서 삼각산을 바라보면 내가 서 있는 수락산이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그런데 삼각산에 올라가 수락산을 바라보면 수락산이 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그렇다면 수락산과 삼각산 중에 어느 산이 더 높을까?

이 질문은 제가 한 게 아니라 조선 후기 문신 성대중(成大中) 선생께서 던지신 질문으로, ‘청성잡기(靑城雜記)’라는 책 ‘성언(醒言)’ 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성언’은 ‘깨달음을 주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북한산은 원래 옛날부터 삼각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송도(松都)에서 한양으로 오다가 이 산을 바라보면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세 봉우리가 삼각으로 나란히 우뚝 솟아 있어 삼각산이라고 했다는군요. 굳이 높이를 따지자면 수락산은 해발 638m, 북한산은 837m로 제법 차이가 납니다. 북한산 옆의 도봉산은 710m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성대중 선생께서는 여기에 올라가 도대체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기에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영웅이 동시대에 있으면 서로 다투고 문장가가 동시대에 있으면 서로 비난하니, 이는 상대를 낮춰보기 때문이다. 어찌해서 자신을 낮추지 않는가(英雄竝時則爭,文章竝世則저,由其低視之也. 何不自下之耶)?

이것이었군요.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자기중심으로 보게 되면 상대방은 낮고 하찮게 보이는 법. 그러다 끝내는 다툼이 일어나게 되니 제발 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겸손은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성장을 위해 더욱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낮춰야 흘러들어오는 물도 많을 테니까요.

문득 이런 장면이 그려집니다. 삼각산과 수락산이 서로 자기가 높다고 우기고 있을 때 저쪽에서 한라산과 백두산이 다가옵니다. 그 뒤로는 또 에베레스트 산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납니다. 싸우던 두 산은 그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대기권 밖 우주에서 내려다본다면 모두가 아무것도 아닌 점 하나에 불과할 뿐이니, 도대체 높으니 낮으니 싸울 이유가 사라집니다. 우리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한없이 겸손해져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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