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자손만대 조상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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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에 수록된 그림. 진상을 위해 모은 말을 점검하고 있다.
‘탐라순력도’에 수록된 그림. 진상을 위해 모은 말을 점검하고 있다.
“나라에 중한 것은 군사이고, 군사에 중한 것은 말입니다.”

태종 9년(1409년) 11월 14일, 사간원에서 태종에게 올린 시무책의 한 구절이다. 당시에 말(馬)이 군사력의 중요한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말의 원활한 확보가 문제였을 것이다. 제주도의 ‘양이목사본풀이’는 바로 그러한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신화이다.

제주에 탐라국이 있던 시절, 양씨 중의 한 사람이 서울 상시관의 명을 받아 목사벼슬을 하였다. 그 시절 제주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백마 백 필을 서울에 진상하였다. 양 목사도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는 곱게 진상을 올렸다. 그런데 네 번째 진상을 올릴 때 갑자기 백마 백 필을 가지고 싶은 탐심이 일었다. 그래서 상시관에게 우선 진정부터 올렸다. “백마 백 필을 진상 올리면 제주 백성이 곤경에 빠져 어느 마장이나 탄식과 근심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마장의 마부들을 불러 이번부터는 자기가 직접 상시관에게 진상을 바치겠노라고 하였다.

서울에 진상을 바치러 간 양 목사. 한양 고을을 돌아다니면서 백마 백 필을 다 팔고, 그 돈으로 물품을 사 배에 싣고 제주로 돌아와 팔았다. 그러기를 한 번, 두 번, 세 번. 상시관에서 왜 진상을 하지 않느냐고 독촉하지 않고 곱게 지나가자 백마 삼백 필은 모두 양 목사의 차지가 되었다.

상시관에서는 금부도사와 자객을 시켜 당장 양 목사의 목을 베어 올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눈치 빠른 양 목사. 이방과 형방을 불러 가장 빠르고 좋은 고 사공의 배를 준비시켰다. 도망을 갈 참이었던 것이다.

양 목사를 태운 고 사공의 배가 울돌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배 한 척이 마주 달려와서는 고 사공의 배에 탁 붙었다. 금부도사와 자객이 탄 배였다. 금부도사는 창검을 꺼내들고 자객은 칼을 휘두르며 양 목사에게 큰 범같이 덤벼들었다. 그러나 양 목사가 큰 칼을 한 번 휘두르니 자객의 머리는 간 곳 없었다. 날랜 금부도사도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지만 양 목사한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양 목사가 호령하였다.

“모든 백성 중에 특히 불쌍한 제주 백성은 일 년에 한 번 백마 백 필씩 진상을 올리니, 임금의 배가 얼마나 큰 배이기에 일 년에 백마 백 필씩을 먹어 치워 버리느냐? 임금이 먹는 백마 백 필 진상을 나도 한 번 먹어보려고 입을 벌려 먹으려는데, 제주의 불쌍하게 굶는 백성을 생각하니, 백마 백 필을 다 삼키지도 못하고 목에 걸려 목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양 목사의 때늦은 호령과 기개도 잠깐. 무릎을 꿇고 있던 금부도사가 갑자기 펄쩍 뛰어서는 양 목사의 상투를 잡고 감태같이 흐트러진 머리를 돛대 줄에 꽁꽁 묶어 맨 뒤 고 사공에게 말했다. “돛대 줄을 당겨라.” 양 목사는 갑자기 돛대에 매달린 몸이 되었다. 금부도사가 창검을 한 번 휘두르니 양 목사의 육신은 청룡 황룡 백룡으로 변하여 깊은 물속 용왕국으로 들어갔다. 육신이 떨어져나간 양 목사. 고 사공에게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탐라 양씨가 악기를 울리며 나의 슬픈 역사를 풀어주면 우리 자손들을 만대까지 유전시켜 주마.”

그 후로 제주에서는 백마 백 필을 모아 진상하는 일을 모면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비극적 희생이 가져온, 결과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관리로서 가장 큰 영예, 그것은 자손만대 조상신으로 모셔지는 일일 것이다. 그가 백성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했다면.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조상신#양 목사#백마 백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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