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못가본 길’이 아름답지만… 이 길마저 사랑해야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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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공만 한 지구의(地球儀)를 조만간 하나 장만해야겠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구형의 원만함, 아름다움을 느끼고 쓰다듬어야겠다. 초강대국도, 축구 강국도, 경제 대국도 내 손바닥 안에서는 평등할 것이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현대문학·2010년) 》

동료들이 승진해 나보다 한 계단 더 올라섰을 때, 한 재벌이 자산 몇 십조 원을 축적했다는 소식이 들려 그들만의 세상이 있는 것만 같을 때 지구의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는 건 어떨까.

한 계단 위에 있는 듯한 동료도, 외딴 왕국에 사는 것만 같은 재벌도 결국 나랑 다를 것 없이 같은 지구 상에 있는 존재일 뿐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들 이 지구에서 태어났고 삶이 다하면 똑같이 지구의 대지 속으로 돌아간다.

작가의 말처럼 구형의 표면에선 아무 곳이나 자기가 선 자리가 중심이다. 지구는 둥글기에 내가 사는 곳, 혹은 내가 곧 세상의 중심이 된다.

작가의 말을 듣고 있자면 작가는 못 이룬 것에 대한 집착이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작가는 “못 가본 길에 대한 새삼스러운 미련은 노망인가, 집념인가. (중략)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라고 털어놓는다. 삶을 사랑하는 만큼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작가는 스무 살에 겪은 6·25전쟁 때문에 스무 살에 성장이 멈췄다고 생각한다. 취업난, 전세난 등으로 난리통을 겪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은 작가가 겪은 전란을 상상해 보면 그래도 위안을 받지 않을까. 험난할지라도 삶이 주는 기회에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고통은 영혼을 성장시킨다. 전쟁의 상처를 글로 풀어 낸 작가처럼 오늘의 상처가 내일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면 고단한 발걸음, 그래도 좀 더 멀리 밀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못가본 길#사랑#축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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