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재일동포를 생각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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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와 모국 사이에도 갈등의 씨앗이 돋고 있다
민족교육은 희미해지는데 대안학교 승인은 늦어지고
민단의 법인화도 의견대립
재일동포 헌신 잊지 말되 달라진 환경 적극 수용해
새 차원의 관계로 나아가야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일본에서 ‘자이니치(在日)’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생경함은 아직도 여전하다. ‘일본에 있다’는 뜻인데, 주어가 없다. 일본에서 ‘자이니치’는 곧 ‘재일동포’를 뜻한다. 오해 없이 그렇게 통용된다. 마음이 허하다. 일본사회에서 주역이 아니라는, 재일동포의 위상이 그들의 호칭에도 그대로 투영된 것 같아서다.

민단계든 총련계든 그들은 남과 북을 머리에 이고 체제 경쟁까지 벌이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이국에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결속을 유지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광복 70년을 맞으며 한국과 재일동포의 관계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최근에 부상한 두 가지 쟁점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첫 번째 쟁점은 민족 교육 문제다. 일본 내 민족학교는 오사카에 건국학교와 금강학교, 교토에 교토국제학교가 있다. 이 3개가 전부다. 이들은 일본 학교교육법 제1조의 적용을 받는다. 그래서 1조교(1條校)라 불린다. 일본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기에 일본의 교육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총련계 조선학교 96개에 비하면 민족학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문제는 이마저도 학생 수 감소, 재정 악화, 일본학교화로 인해 민족학교로서의 특성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매년 이들 학교에 평균 10억 원씩(학교 재정의 35% 수준)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동경한국학교처럼 일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각종학교’로 전환하려 했으나 학교 측은 반대한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다시 봐야 하고, 모교의 명칭과 성격 변경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2008년 오사카에서 개교한 각종학교 코리아국제중고교(KIS·현재는 오사카한국국제학교로 개명)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오사카 총영사관은 2012년 이 학교의 한국학교 전환을 승인해 달라고 교육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승인을 유보했다. 몇 가지 법적 미비가 있는 데다 민단의 원로들이 이 학교 설립자가 예전에 총련계였던 점을 문제 삼고 있어서다.

이 문제는 갈등이 아니라 변화의 시각에서 풀어야 할 듯하다. 일본 내 민족 교육도 세계와 미래를 볼 때가 왔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이 학교가 새로운 민족 교육 모델로 적합하고, 설립자의 과거는 탈색됐으며, 미비점을 보완했다는 오사카 총영사관의 현장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이 학교는 국제학교라는 점에서 시대 흐름에 맞고, 한국의 상사 주재원이나 일시 체류자 등 소위 신정주자(뉴커머), 한국 국적이면서도 할 수 없이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학교를 모델로 일본 내에 비슷한 학교들을 설립할 수도 있다. 이 학교를 승인한다면 일본 내 민족 교육 방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재일민단의 법인화에 관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매년 80억 원을 민단에 지원하고 있다. 민단은 1946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임의단체다. 그렇다 보니 지원금의 용처나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일본 정부가 최근 총련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정색을 하고 문제를 삼는다면 흔들리기 쉬운 구조다. 그래서 최근 한국 국회에서는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민단의 법인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단은 소극적이다.

이 문제도 민단이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한국도 이제 투명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민단의 고령화도, 일본 국적 취득자가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민단은 문호를 개방해 3, 4세대의 젊은이, 뉴커머, 일본 국적 취득자들까지 받아들여 ‘재일 코리안’ 전체를 아우르는 구심점으로 거듭나야 그나마 미래가 있다. 그러려면 개방적 의사결정 구조와 회계의 투명성이 필요하다. 법인화는 그 첫걸음이다.

다만, 꼭 하나 지적해 두고 싶은 게 있다. 얼마간의 지원금을 앞세워 재일동포들의 모국에 대한 헌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국이 국가적 행사를 할 때마다, 재해를 당할 때마다, 큰 건물을 지을 때마다 아낌없이 주머니를 털었다. 도쿄의 민단중앙본부에 요청해서 받은 자료에는 그동안 모국을 위해 벌인 크고 작은 성금 활동이 몇 장에 걸쳐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국은 아직도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재일동포는 생활을 말하고, 한국 정부는 정책을 말한다. 틈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고 접점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접점은 ‘공감’이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양쪽 모두에 득이 된다는 ‘공감’이 필요하다. 거기에 ‘배려’까지 있다면 더 좋겠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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