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Travel]헬싱키의 밤 빛내주는 재즈공연, 도시는 행복에 잠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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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핀란드서 크리스마스 즐기기

이제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한 주. 핀란드 북극권의 코르바툰투리(山)에 산다는 산타클로스도 무척이나 바빠지지 않을까 싶다.

지구촌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장 짙게 풍기는 곳은 역시 핀란드가 아닐 까 싶다. 그건 핀란드 사람의 크리스마스 풍습 때문이다. 그들은 산타클로스가 핀란드 북극권에 살고 있고 그래서 산타클로스가 세상의 어린이를 찾아갈 때 핀란드부터 들른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북극권 초입의 도시 로바니에미에는 ‘산타클로스 빌리지’가 있다. 매일 매일이 크리스마스인 이 특별한 곳엔 정부가 공식 임명한 산타클로스가 상주한다. 전 세계 어린이가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편지도 여기로 오는데 답장도 이곳의 공식 산타우체국이 맡는다.

핀란드의 전통사우나. 흐르는 땀을 자작나무 가지로 훑는다(가운데 사람). 핀란드정부관광청 제공
핀란드의 전통사우나. 흐르는 땀을 자작나무 가지로 훑는다(가운데 사람). 핀란드정부관광청 제공
하지만 이건 외형적인 것이고 이들의 풍습은 겉모습보다 더 진하게 크리스마스와 맞닿아 있다. 이들이 오랫동안 ‘크리스마스=평화’라는 메시지를 가족과 함께 조용히 실천해온 전통 때문이다. 핀란드의 크리스마스시즌은 12월 13일 성 루치아 축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성탄 다음 날(12월 26일)까지 14일간 계속된다. 절정은 물론 크리스마스이브. 이날은 아주 특별하다. 온 식구가 쌀로 만든 따끈한 푸딩에 크림을 듬뿍 얹고 그 위에 계핏가루를 뿌려 함께 먹는 것으로 아침을 연다. 오후엔 온 가족이 함께 사우나를 즐긴다. 핀란드인의 사우나 사랑은 특별하다. 인구가 540만 명인데 사우나 수가 500만개라는 게 그걸 증명한다. 집집마다 사우나를 두고 매일 즐긴다.

로바니에미의 산타클로스빌리지에 상주하는 산타와 도우미들. 핀란드정부관광청 제공
로바니에미의 산타클로스빌리지에 상주하는 산타와 도우미들. 핀란드정부관광청 제공
‘크리스마스=평화’ 특별한 분위기

저녁엔 근사하게 차린 크리스마스이브 정찬을 즐긴다. 주로 구운 햄과 연어 등을 먹는다. 그런데 그전에 꼭 하는 일이 있다. 먼저 세상을 뜬 가족에 대한 성묘다. 나는 이거야말로 크리스마스가 핀란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상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즈음 헬싱키의 일몰시간은 오후 3시 전후. 그러니 묘지를 찾을 때는 깜깜한 밤중이다. 그럼에도 묘지 일대는 눈 속에서 환히 빛나고 있다. 저마다 주변의 눈을 파내 작은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안에 촛불을 밝혀두기 때문이다. 눈 속에서 하늘거리는 촛불 덕분에 세상 어떤 곳보다도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눈 덮인 묘지. 핀란드의 크리스마스는 이런 따뜻함 속에 다가온다.

핀란드인의 ‘크리스마스=평화’라는 생각은 탁견이다. ‘이 땅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온 그리스도의 탄생’이란 복음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남부의 투루크(Turuk)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다. 그래서 성 루치아 축일에 펼치는 크리스마스 선포식도 여기서 하는데 세계 각국에 TV로 중계된다. 그때 선포하는 것은 평화. 그런 만큼 크리스마스의 평화를 돌아가신 분과 나누는 핀란드의 전통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다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전통이 이렇듯 혹독하고 추운 북극권의 겨울에서 잉태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낮이라고는 여섯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하루 대부분을 어둠 속에서 지내고, 긴 겨울 내내 하염없이 내리는 눈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런 척박한 땅에서…. 하지만 인류 구원 역시 예수의 고난 덕분이라는 기독교의 복음을 상기한다면 동토에서 따뜻한 전통이 태어난 것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고통이 큰 만큼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도 크므로. 그러니 핀란드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것은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기나긴 어둠을 적응하는 지헤

북위 60도 이북의 핀란드. 이 고위도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여름엔 밤이 짧고 겨울엔 낮이 짧다는 것이다. 그걸 뭉뚱그리면 ‘빛’과 ‘암흑’의 극적인 교차다. 뭐든 적당한 게 좋을 것도 같은데 핀란드에서 계절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서울과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오늘 일조시간을 보자. 서울(북위 37도3분)은 오전 7시 40분에 해가 떠서 오후 5시 15분에 진다. 헬싱키(북위 60도10분)는 오전 9시 21분에 해가 떠 오후 3시 12분에 진다. 낮의 길이가 서울은 9시간 34분, 헬싱키는 5시간 50분이다. 헬싱키가 근 네 시간이나 짧다. 그런 짧은 낮마저도 실종되기 일쑤다. 허구한 날 하염없이 내리는 눈 때문이다. 그런 날엔 찌푸린 잿빛하늘로 인해 한낮도 밤처럼 어둡다.

그건 정반대인 한여름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때는 밤이 짧아 생활리듬이 흐트러진다. 잠을 청하려면 일부러 커튼을 쳐야 하고 자정이 임박해도 어둠은 오지 않아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핀란드, 아니 스칸디나비아의 북유럽인에게 공통적으로 발달한 것이 있다. 빛(어둠)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있다. 북구에서 발달한 실내조명이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이디어며 방식이 독특하게 발달했다. 실내 거주시간이 길어지는 긴 겨울과 긴 여름에 생활의 단조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것이다. 그건 조명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자 테이블 식기 벽지 등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실내장식도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쏠리는 세계적인 이목과 찬사는 ‘빛에 대한 민감성’에 힘입은 바 크다.

음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빛을 피해, 혹은 어둠을 피해 실내로 들어가는 핀란드 사람에게 음악 감상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소일거리다. 핀란드에서 음악이 발달한 이유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국민음악가 시벨리우스의 나홀로 공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도 헬싱키를 보자. 헬싱키방송교향악단과 헬싱키필하모닉 등 세 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모두가 세계적 수준이다. 이 중 두 오케스트라는 3년 전 개관한 헬싱키 뮤직센터의 공동소유자(지분 각 40%)다. 콘서트홀의 음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일본 도쿄의 산토리홀과 더불어 세계 3대 명품 공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뮤직센터에 둥지를 튼 시벨리우스 아카데미(1883년 설립) 역시 세계적 명성의 음악학교다. 핀란드 음악문화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또 하나의 지표가 있다. 지구촌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슈타인웨이 피아노의 보유 대수다. 1800대로 이 부문 세계 1위로 알려져 있다. 그런 핀란드에는 이런 말도 있다. ‘오케스트라가 없다면 그 곳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인구 540만 명의 나라에 오케스트라가 22개로 인구대비 오케스트라 수도 역시 세계 1위다.

그러다 보니 핀란드에서 고전음악은 공공의 자산이다. 국민 5명 중 한 명이 연간 1회 이상 오케스트라 공연장에 갈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의 오페라축제 역시 핀란드의 사본린나에서 1912년에 시작됐다. 핀란드의 음악애호와 빛에 대한 감수성의 상관관계는 의외로 멀고 깊고 넓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고전음악을 넘어 재즈와 탱고에까지 미친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르헨티나의 전통음악 탱고가 아르헨티나 밖에서 가장 발달한 곳이 핀란드다. 재즈도 그에 못지않다. 유럽에서 재즈는 독일이 중심이지만 그 독일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재즈뮤지션 중에는 핀란드밴드가 다수다. 고전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 재즈로까지 이어진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제는 북유럽 재즈의 중심으로 올라서며 전 세계를 향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재즈 핀란드 페스티벌 중에 들른 헬싱키 시내 코코재즈클럽의 연주회장. 핀란드의 대표적인 재즈뮤지션 이로 란타라(왼쪽 피아노 앞)가 세계적인 드럼연주자 피터 어스킨과 함께 즉흥연주를 펼치고 있다. 헬싱키=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재즈 핀란드 페스티벌 중에 들른 헬싱키 시내 코코재즈클럽의 연주회장. 핀란드의 대표적인 재즈뮤지션 이로 란타라(왼쪽 피아노 앞)가 세계적인 드럼연주자 피터 어스킨과 함께 즉흥연주를 펼치고 있다. 헬싱키=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고전음악-재즈-탱고 모두 즐길 수 있어

그 첫 번째는 올 9월 18∼21일 헬싱키에서 열린 ‘재즈 핀란드 페스티벌’이다. 재즈를 산업화하기 위해 3년 전 조직한 ‘뮤직핀란드’가 주최한 쇼 케이스. 핀란드재즈를 전 세계에 수출하기 위한 것으로 17개 밴드(연주자 71명)가 참가해 매일 공연을 펼쳤다. 여기엔 공연기획사와 앨범제작자 등도 59명이 참가해 120명의 외국 관계자 및 바이어와 상담했다. 나를 포함한 미디어도 35명이 참가했다.

나는 페스티벌 내내 다양한 공연을 통해 핀란드 재즈를 가까이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첫날 연주회는 핀란드재즈의 대표주자인 이로 란타라(피아니스트 겸 작곡가)가 세계적인 드러머 퍼터 어스킨(미국) 등과 함께 펼친 즉흥공연이었다. 단 한 번의 연습도 없이 시내 코코재즈클럽에서 펼친 공연이었는데 그 내용은 감동할 수준이었다. 둘째 날은 영국인 작곡가 마크 앤터니 터니지가 피터 어스킨을 위해 작곡한 ‘드럼 키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뮤직센터 콘서트홀에서 들었다. 이날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어스킨이 연주하는 드럼과 어울려 멋진 화음을 선사했다. 존 스토르고르드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드럼협연이라는 이 특별한 공연을 통해서도 헬싱키는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처럼 핀란드의 음악전통은 깊은 만큼 포용력도 크다. 그건 재즈도 마찬가지. 재즈공연도 술잔을 든 채로 서거나 바닥에 앉아 감상하는 등 분위기가 자유로웠다. 또 하나 특별함을 나는 헬싱키 뮤직센터 지하의 블랙박스(창고 형태의 어두운 실내공연장)에서 경험했다. 두 개의 블랙박스를 번갈아 가며 여러 밴드가 제각각 30분씩 펼치는 공연이었다. 청중은 두 공연장을 자유롭게 오가며 공연을 참관했다. 이 공연 방식은 여러 밴드의 공연을 지체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즉, 밴드마다 악기를 교체하고 무대조명을 조정하는데 드는 시간을 줄인 것. 청중들은 공연장이 바뀔 때마다 홀에 차려진 바에서 맥주를 사서 들고 가 감상했다.

시내 ‘코르자모 문화공장’(Culture Factory Korjaamo)도 비슷했다. 이곳은 노면전차 공작창을 개조한 곳. 50 명쯤 들어설 수 있는 작은 바와 200명쯤 앉는 계단강의실 형태의 강당 등 두 곳에서 교대로 공연을 했다. 역시 공연장마다 바가 있고 거기서 술을 사들고 마시면서 공연도 보고 밖에 나가 이야기도 나눴다. 술을 마시며 선 채로 재즈공연을 감상하는 것은 시내 국립오페라극장에서도 마찬가지. 거기에도 역시 재즈공연 공간은 따로 있었다. 이런 특별한 관람문화를 나는 핀란드 사람의 음악적 포용력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권하건대 핀란드 여행 기회가 생기면 고전음악은 물론이고 재즈와 탱고까지 모두 즐겨보길 바란다. 32개의 재즈페스티벌이 1년 내내 핀란드 곳곳에서 열린다. 헬싱키 시내 공연장에서도 공연은 쉼 없이 열린다. 가장 상시적으로 공연하는 곳은 코코재즈클럽과 문화공장 코르자모다. 나는 뉴욕과 베를린, 파리와 도쿄에 가야 좋은 재즈공연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 재즈애호가에게 말한다. 단연코 핀란드도 그에 못지않다고, 아니 어쩌면 그보다 나을 수도 있다고. 어둠이 지배하는 이 멋진 겨울, 눈 내리는 핀란드의 겨울밤을 따뜻한 핀란드 재즈와 더불어 지내는 것도 강추다.

오로라 분위기로 꾸민 헬싱키 반타국제공항의 핀에어 라운지.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오로라 분위기로 꾸민 헬싱키 반타국제공항의 핀에어 라운지.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항공 핀란드 국적 항공사 핀에어가 인천∼헬싱키 직항 편을 매일 운항하고 있다. 헬싱키 반타국제공항에선 유럽 각 도시로 가는 연결항공편도 많다. 핀에어는 새롭게 청소년(12∼25세)에게 저렴한 운임과 편리한 조건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수하물도 23kg 미만 두 개까지 허용한다(일반인은 한 개). 그리고 최근 반타국제공항 터미널에는 오로라 테마로 꾸민 라운지도 새로 만들었다. 그곳의 샤워룸에 세계 최초로 사우나를 설치하고 라운지 이용객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www.finnair.com

◇핀란드 관광청:www.visitfinland.com

◇핀란드 재즈음악 ▽뮤직핀란드: 핀란드 음악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단체로 핀란드 음악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http://musicfinland.com ▽재즈 핀란드: 핀란드 재즈음악에 관한 정보사이트. 재즈 핀란드 페스티벌 정보도 여기에 있다. http://jazzfinland.fi ▽유럽재즈네트워크: 유럽 각국의 재즈협회 소개. www.eurojazz.net 핀란드재즈연맹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www.eurojazz.net/finnish-jazz-federation-suomen-jazzliitto ▽헬싱키 재즈공연장 △코코재즈클럽: www.kokojazz.fi △Culture Factory Korjaamo:www.korjaamo.fi △헬싱키 뮤직센터: www.musikkitalo.fi ▽재즈음반 판매점 디겔리우스: www.digelius.com 헬싱키 시내 디자인박물관 근처

헬싱키=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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