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배극인]아이누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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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도쿄 특파원
배극인 도쿄 특파원
아이누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와 쿠릴열도 일대의 선주(先住) 민족이다.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으며 어로와 채집 생활을 주로 하며 살았다. 아이누는 그들 말로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 민족은 19세기 후반 일본이 러시아의 동진(東進)에 맞서 북방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비극을 맞았다. 메이지 정부는 본토의 영세 농어민을 집단 이주시키면서 아이누의 토지와 문화를 강탈해 갔다. 전통적인 수렵 생활을 금지했고 창씨개명과 일본어 교육을 강요했다. 이를 강제한 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구토인(舊土人)보호법’이었다. 아이누를 개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민족 말살정책을 펼친 것이다. 그래도 아이누는 명맥을 유지해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2만7000여 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은 ‘구토인보호법’을 100년 가까이 유지하다 1997년에야 폐지했다. 하지만 아이누를 먼저 정착한 주민으로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토지와 자원, 정치적 자결권 요구를 경계한 것이다. 일본은 유엔이 2007년 ‘원주민 권리에 관한 선언’을 발표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지자 이듬해 6월 아이누를 선주 주민으로 인정한다는 결의문을 의회에서 채택했다.

그런데도 아이누의 설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누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자민당 소속 홋카이도 현의원은 11일 도의회 결산특별위원회에서 “아이누가 선주 민족인지 어떤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8월에는 삿포로(札幌) 시의원이 “아이누 민족 따위 이미 없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아이누 단체들이 공개 질문서에서 “어릴 때부터 차별을 받고도 굴하지 않고 선조의 전통을 이어온 우리도 멸망했다는 말인가”라며 분노했지만 사죄는 없었다.

아이누 후손들은 도둑맞은 선조들의 유골도 못 찾고 있다. 도쿄대, 홋카이도대 등 일본의 옛 제국대학들은 아이누를 연구하겠다며 묘를 파헤쳐 유골을 수집했다. 지난해 일본 정부 조사 결과 전국 12개 대학이 지금도 1636기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 198기를 보관 중인 도쿄대는 표본실 입구에 유골 도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고가네이 요시키요(小金井良精) 의학부 교수의 흉상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아이누의 반환 요구가 거세지자 일본 정부는 올 6월 홋카이도 아이누 마을에 ‘유골 위령 및 관리를 위한 시설’을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짓는다고 발표했다. 호적등본 등으로 후손이 확인된 유골은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대상은 23기에 불과하다. 마을에서 도굴당한 유골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 사시마 마사키(差間正樹) 우라호로(浦幌)아이누협회장은 전화 통화에서 “한 번도 사죄하지 않은 대학의 책임을 유야무야하면서 유골을 한 곳에 모아놓고 연구에 계속 활용하겠다는 의도”라며 분노했다. 그는 “과거에 도굴꾼들이 죽은 지 며칠 안 되는 조상의 머리를 잘라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이누의 눈물은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 일본은 1903년 오사카에서 열린 박람회 때 ‘인류관’을 설치해 아이누인을 중국인 조선인 오키나와인과 함께 전시했다. 최근의 아이누 부정 발언도 오키나와 주민이나 재일 한국인 등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을 다시 노골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사회 분위기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루모토 히데키(樽本英樹) 홋카이도대 교수(정치학)는 “일본은 점점 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이 표면화된 유럽의 보통국가처럼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보통국가처럼 차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향후 대응이 궁금하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아이누#일본#구토인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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